4년간 넥센서 동고동락 두 사람, 염 전 감독 SK 단장 맡게 되면서 서로에게 질 수 없다는 분위기 팽배 개성 강한 ‘프런트 야구’ 대결 볼만
양 팀을 이끄는 수장은 올해 새로 지휘봉을 잡은 장정석 감독(넥센)과 트레이 힐만 감독(SK)이다. 그렇지만 물밑에서 정면승부를 벌이는 건 이장석 전 넥센 대표이사와 염경엽 전 감독이다.
한때 동지였던 둘은 언젠가 적이 되어 만날 운명이었다. 다만 이렇게 빨리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17일 염 전 감독이 SK 단장직을 받아들이면서 두 팀의 대결은 갑작스럽게 관심을 끄는 ‘빅 매치’가 됐다.
넥센은 원래부터 이 전 대표를 중심으로 ‘프런트 야구’를 하는 팀이었다. 선수 수급부터 스카우트까지 야구장 밖의 모든 일을 프런트가 처리했다. 감독의 역할은 야구장 안으로 한정됐다. 염 전 감독은 구단이 제공한 재료로 매년 멋진 요리를 만들어냈다. 지난해엔 박병호와 조상우, 한현희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진 가운데서도 팀을 3위로 이끌었다.
프런트 야구를 앞세우는 팀 분위기 속에서 염 전 감독은 자신의 능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섭섭함을 느꼈다. 자신의 야구 색깔을 펼칠 기회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구단은 달랐다. 넥센을 이끄는 힘은 감독의 개인 역량보다 팀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시즌 도중 염 전 감독이 SK 감독으로 간다는 설이 파다했다.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팀으로 간다는 소문 때문에 법적 도덕적 논란이 일었다. 염 전 감독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염 전 감독은 준플레이오프에서 LG에 패한 날 구단과 상의 없이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고, 양측의 갈등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당시 넥센의 분위기는 “차라리 염 감독이 SK 감독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넥센과는 전혀 다른 환경인 SK에서라면 염 전 감독의 진짜 실력이 온 세상에 드러날 것이라는 속내 때문이었다.
염 전 감독은 SK 단장 취임 후 “그동안 내가 준비했던 생각과 SK 시스템이 비슷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넥센이 몇 해 전부터 주창해 온 것 역시 ‘시스템 야구’다. 넥센이 염 전 감독의 후임으로 운영팀장 출신의 장정석 감독을 깜짝 발탁한 것도 야구 시스템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장석과 염경엽의 자존심 대결. 그리고 똑같이 시스템 야구를 표방하는 SK와 넥센. 두 팀은 서로에 져서는 안 되는 상황이 됐다. 결국 시즌 뒤의 성적이 승자를 말해 줄 것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