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처음 보는 과목들의 두꺼운 책을 받아들고, 고시원에 들어가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던 청년이 있었다. 그는 지은 죄가 없는데 독방에 갇혔다며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20대 후반이 되도록 공무원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개념도 모르고 공무원을 준비한다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이 시험에 그토록 깊게 박혀있었던 이유가 새삼 궁금해졌다. 나는 왜 공무원이 되려 했을까.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듯, 대학생 다음의 내 신분은 회사원인 줄로만 알았다. 각종 취업 시장의 문턱에서 여러 번 퇴짜를 맞으면서도 현실을 보지 못했다. 통과의례인 줄 알았다. 조금 기다리면 내 차례가 될 것만 같았다. 하나둘 사회로 나가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면 가슴속에 이는 감정을 숨기곤 했다. 조바심이었다. 공무원이 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 이유도 다름 아닌 이 조바심이었다. 안정된 고용조건이나 좋은 사회적 시선,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의미 있는 직장이라는 등의 이유는 모두 공무원을 준비하며 만들어진 이유였다. 나는 조바심을 견디지 못해 시험 시장에 뛰어든 것에 지나지 않았다.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건 어쩌면 시작부터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계기가 있진 않았다. 한계에 달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다음 날 책을 모두 묶어 집 앞에 내놓고, 가족들에게 알렸다. 반응은 생각보다 잠잠했다. 나 역시 시큰둥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도, 미래가 깜깜해지는 감정도 일지 않았다. 조용히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그 한 해는 나의 세상이 바뀌는 과정이었다. 작은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앞으로 살아갈 나의 미래를 조금씩, 그러나 세세히 조각했다. 다시는 세상의 조류에 떠다니지 않도록 닻도 달았다. 내 자리를 잊지 않기 위한 마음가짐의 닻이었다. 회사를 다니며 차근차근 돈과 꿈을 모았다. 아침을 먹지 못할 정도로 바쁜 청년들을 위해 동대문 근처에 작은 수프 가게를 하나 열었다. 빚으로 도배가 된 가게지만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베리아 같은 세상에, 내 의지로 나와 내 일을 찾아가고 있다. 1년 만에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어색하다. 하지만 어색함은 스치듯 지나갈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공부하는 동안 나를 도서관에 묶어두던 걱정거리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사회는 맨몸으로 부딪쳐야 하며 거리는 경쟁으로 가득하다. 겁이 나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변한 게 있다면, 세상은 내가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지, 누군가에게 내던져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나 하나뿐이었다.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