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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세 남자, 완숙의 경지를 향하다

입력 | 2017-01-17 03:00:00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세 배우 장두이-하성광-이형훈




이형훈 하성광 장두이 씨(왼쪽부터)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 대해 “피와 뼈, 살과 같은 작품”이라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이들은 “구족을 멸하는 어마어마한 사건도 질투심이라는 작은 씨앗에서 비롯됐다. 연기를 할 때마다 내 마음에 어떤 싹을 틔워낼 씨앗을 담을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훨씬 완숙돼 가는 것 같아요.”

 국립극단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악역 도안고를 맡은 장두이 씨(65)는 12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연습을 마친 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성광(47·정영 역), 이형훈 씨(31·조씨고아 역)도 옆에서 고개를 깊숙이 끄덕였다.

 2015년 동아연극상 대상을 받은 ‘조씨고아…’는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18일부터 다시 공연된다. 벌써 5회차가 매진됐고 가장 좋은 좌석인 R석 대부분이 판매됐다. 중국의 4대 비극 중 하나를 고선웅 씨(49)가 각색해 연출한 이 작품은 4년 만의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작으로, 연기상(하성광)과 연출상, 시청각디자인상(김혜지)까지 차지했다. 지난해 중국에서도 공연돼 극찬을 받았다.

 질투에 사로잡힌 도안고가 조순 가문의 300명을 멸족시키고 마지막 핏줄인 ‘고아’마저 죽이려 한다. 정영은 고아를 지키려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고, 핏빛 복수를 향해 질주한다. 경쾌하고 빠르게 휘몰아치는 이야기 속에 운명의 잔인함과 삶의 허무함이 진하게 녹아 있다. 연극 ‘푸르른 날에’ ‘칼로 막베스’,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 등을 통해 입증된 고 연출가 특유의 유머 코드도 반짝인다. 

 하 씨는 “신의를 지키기 위해 혈육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하는 고뇌 속에 몸부림치는 정영을 더욱 정영답게 표현하고 싶다. 더 멀리 더 깊게 보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장 씨는 “도안고가 잔혹할수록 정영의 캐릭터가 살아나기에 그렇게 무섭다는 ‘중2’ 딸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며 집에서도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 씨는 도안고의 양아들이 돼 마냥 해맑게 지내다, 진실을 알게 된 후 혼란과 고통을 느끼며 복수를 감행하는 고아의 감정 변화를 빠르게 표현했다. 이 씨는 “1막은 등장인물이 많고 이야기도 격정적으로 흘러가는 데 비해 2막은 정영과 고아의 에너지로 채워야 해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공연계에서 ‘뇌가 섹시한 남자’로 불리는 고 연출가는 연습 때 책상 위에 각티슈를 준비해 놓고 몇 번이나 눈물을 닦아내며 보완 사항을 지시했다. 하 씨는 “연습할 때마다 (고 씨가) 매일 운다”고 귀띔했다. 장 씨는 “눈물마저 섹시하다”며 농담처럼 말했다. 

 이들에게 ‘조씨고아…’는 영광과 아픔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이다. 초연 때 임홍식 씨(공손저구 역)가 연기를 마치고 들어온 후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올해 연습을 시작하기 전 초연 당시 촬영한 공연 영상을 함께 봤는데, 공교롭게도 임 씨가 떠난 날이었다.

 “숙연한 마음으로 영상을 봤어요. 배우들이 입버릇처럼 말하잖아요. 무대에서 죽고 싶다고요. 그걸 직접 보니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몰아쳤어요. 시간과 삶에 대한 리듬이 낯설게 다가왔다고나 할까요….”(장두이 씨)

 이들은 임 씨가 ‘행복한 배우’였기를 기도했다. 이 작품은 끈끈하고 강력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중국 공연 때 통관 문제로 의상과 소품이 공연 당일 도착해 모두가 피를 말리는 와중에도 무사히 공연을 해 냈다. 이들의 에너지는 무대 위에서 고스란히 발산돼 관객에게 뜨겁게 전해진다.

 하 씨는 “연극이 생물이라면 ‘조씨고아…’는 생명력이 무척 길 거라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 씨는 “중국에 또 가고 싶다. 내친김에 토니상까지 가져오자”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2월 12일까지. 2만∼5만 원. 1644-2003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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