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스포츠카-스포츠세단 변천사
아자동차가 2017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스포츠 세단 스팅어의 모습. 스팅어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5.1초로 기아자동차 차량 중 가장 빠르다. 스팅어는 1990년 현대자동차의 스쿠프 이후 진화하고 있는 국산 스포츠 세단의 기술력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아자동차 제공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재 엘란 보유자는 500명 남짓인 것으로 추정된다. 엘란은 1996년 나온 이후 3년 만인 1999년 단종됐다. 1997년 기아차가 법정 관리에 들어가는 등 제조사의 경영 악화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당시 스포츠카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인식이 부족했다. 특히 국산 스포츠카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다. 엘란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제로백)이 7.4초로 유명 스포츠카들에 뒤졌다. 크기는 중형차보다 작은데 가격은 국산 중형차 값의 2배였다.
엘란부터 스팅어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적잖은 차들이 토종 스포츠카란 이름으로 나왔다.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탄생했지만 달린 길이 꽃길만은 아니었다. 무늬만 스포츠카란 놀림도 적잖게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 스포츠카란 이름으로 나왔던 국산 차들을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카로 보기엔 힘들다는 것이 자동차업계의 의견이다.
페라리 같은 스포츠카를 만들기엔 국내 자동차회사들의 기술력이 모자란 게 사실. 또한 국내에서는 스포츠카가 다니기엔 정체 구간이 너무 많아 스포츠카를 개발할 유인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국내 업체들은 중형차의 디자인을 날렵하게 바꾸고 엔진 성능을 향상 시킨 스포츠 세단 형태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스팅어와 지난해 10월 현대자동차 제네시스가 내놓은 G80 스포츠가 대표적이다.
1990년 스쿠프
1996년 엘란
2012년 더 뉴 제네시스 쿠페
6년 후인 1996년 엘란보다 석 달 앞서 나온 현대차의 티뷰론은 ‘국산 최초의 스포츠카’란 수식어가 붙었다. 무엇보다 곡선미를 살린 디자인 그리고 상어란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 전면부의 모습이 외국 영화 속 스포츠카를 연상시켜 화제가 됐다. 현대차는 2001년 새로운 스포츠카인 투스카니를 내놓았다. 투스카니는 국내 최초로 수동 6단 변속기와 당시 국내 최대 사이즈인 17인치 알루미늄 휠, 듀얼 머플러 등 스포츠카 전용사양이 대폭 적용됐다. 국내 자동차회사에서 ‘스포츠카’란 이름을 쓴 차는 투스카니가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이후 나온 차량들은 기존 모델을 스포츠 쿠페로 변형시킨 형태였다. 물론 성능은 스포츠카에 좀 더 가까워져 갔다. 2008년 나온 제네시스 쿠페는 후륜 구동, 배기량 3800cc 엔진, 6.5초의 제로백 등으로 기존 어떤 국산 차보다 역동적인 주행감을 줬다. 2012년 ‘더 뉴 제네시스 쿠페’의 힘은 더 세졌다. 스포츠 세단 분야에서 국내 회사들이 글로벌 회사들과 경쟁할 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차이기도 하다. 포르테 쿱, K3 쿱, 아반떼 쿠페, 아반떼 스포츠처럼 준중형차를 쿠페 형태로 개량한 차들도 잇달아 나오며 스포츠 세단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