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앙투안 바토, ‘이탈리아 희극배우들’.
지붕 수리공 아들로 태어난 장앙투안 바토(1684∼1721)는 프랑스 상류사회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화가였습니다. 감미로운 귀족 연회 그림으로 귀족층과 미술계의 극찬을 이끌어 내었지요. 그렇다고 화가가 상류사회의 호사스러운 한때만을 주목한 것은 아닙니다.
화가는 사회적 신분이 낮았던 배우들에게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다수의 판화와 유화를 남겼지요. 특히 화가는 18세기 인기를 끌었던 이탈리아 유랑극단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번듯한 극장이 아닌 거리와 장터 임시 무대에서 펼쳐졌던 공연은 꼼꼼한 대본도 없었어요. 무대 시작과 끝, 중심 사건과 맡은 역할 정도만 대략적으로 정해 두고 공연을 했지요.
화가는 왜 피에로를 막 끝난 공연과 곧 시작될 삶의 막간에 세워둔 것일까요. 세상은 무대이며, 인간 삶은 배우의 덧없는 연극 같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세계는 극장이며, 우리 인생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라 주장하려 했던 것일까요. 화가는 질문을 던질 뿐 대답은 우리 몫입니다.
새해를 맞아 공부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저녁 시간 공동의 관심사와 관련된 글을 읽고 토론을 했지요. 현실의 이름표를 뗀 자리였습니다. 역할에 맞춤한 분장도 지운 상태였지요. 수많은 제약과 의무의 경계를 넘어서자 시들했던 것들에 차츰 생기가 돌았습니다. 늦은 밤, 남이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한 본격적인 무대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