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금융 투자사들 이젠 강남-광화문으로
한때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꿈꿨고 ‘한국판 월스트리트’로 불렸던 여의도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여의도는 1979년 명동에 있던 증권거래소가 이전하고, 이어 주요 증권사들이 줄줄이 따라오면서 ‘금융 1번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금융 중심지로서의 입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유 공간이 많지 않은 여의도의 개발은 더딘 반면 광화문이나 강남 등 도심 개발은 꾸준히 진행되면서 이 지역들로 금융회사들이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유안타증권(옛 동양증권)이 본점을 여의도에서 명동으로 옮긴 게 금융투자업계의 ‘탈(脫)여의도 바람’의 시작이었다. 이어 금융 관련 공공기관들이 잇따라 광화문 등지로 이전하면서 바람은 폭풍이 됐다. 2005년 당시 공공기관이던 한국거래소가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부산 중구 중앙동(현 부산 남구 문현동)으로 떠났다. 금융 시장을 관리하고 금융 정책을 수립하는 금융위원회는 2012년 광화문으로, 유가증권 예탁업무를 담당하는 한국예탁결제원은 2014년 거래소를 따라 부산으로 각각 둥지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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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금융회사에 여의도는 애초부터 그다지 매력적인 곳은 아니었다. 미국계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와 크레디트스위스, JP모건 등 외국계 증권사들의 서울지점은 대부분 광화문 일대에 몰려 있다. 모험자본인 벤처투자회사, 소규모 투자자문사들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의도는 2007년 ‘금융중심지의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아시아 금융허브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 계획은 차질을 겪고 있다. 국제금융센터(IFC)와 지하철 9호선은 완공됐지만 다른 인프라 건설이 늦어지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여의도가 미국 월스트리트나 홍콩 센트럴처럼 국제적 금융 중심지로 성장하려면 근무·거주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성유열 대신증권 홍콩법인장은 “글로벌 금융사들이 높은 임대료에도 이 지역들에 둥지를 트는 건 금융 중심지라는 상징성이 있고 쇼핑시설 등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산업 육성 전략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말 정부는 그동안 지적됐던 아시아 금융허브 발전계획의 문제를 반영해 퇴직연금을 기반으로 자산운용 시장을 확대하는 등 금융시장 발전 방향을 전면 수정하기로 예고했다.
이건혁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