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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조건희]제2의 메르스 대응 시나리오 있나

입력 | 2017-01-04 03:00:00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2016년 병신년(丙申年)은 ‘병(病)의 해’이기도 했다. 3월엔 태아의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가 국내에 처음 유입됐다. 7월엔 대학병원 간호사가 결핵에 걸린 채 중환아실에서 신생아를 돌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8월 폭염이 15년 만에 콜레라를 이 땅에 소환하더니, 12월 추위는 인플루엔자(독감) 환자 수 기록을 갈아 치웠다. 역병 전문가 사이에서 “이거 굿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우주의 기운이 도왔다고 할 만한 행운도 있었다. 우선 2015년 우리 사회를 공포로 몰았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작년엔 한국을 피해 갔다.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 16명 중에 임신부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치사율 50%인 황열을 옮기는 모기가 한반도에 정착하지 않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모든 일이 작년에 발생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운이었을 뿐, 당장 올해 현실이 돼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정부의 감염병 대응 시나리오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예컨대 ‘메르스 대응 지침’엔 의심환자 발생 시 지방자치단체와 병·의원이 취해야 할 조치가 28쪽에 걸쳐 상세히 적혀 있지만 초중고교나 회사에서 환자가 나왔을 때 등교 중지나 휴업을 결정할 법적 근거나 기준은 찾아볼 수 없다. 2015년 ‘35번 환자’처럼 100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에 다녀간 환자가 나타나면 어느 범위까지 자가 격리 시킬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감염병 유행에 따른 각종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선 아예 대책이 없다. 아이를 밴 여성이 지카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았을 때 필연적으로 뒤따를 인공유산 허용 논란에 대해 우리 정부는 어떤 대비책을 갖고 있나. 모기 매개 감염병이 창궐해 수많은 생명이 위태로워지면 우리도 중국처럼 ‘불임 모기’를 뿌려 생태계를 조작하는 실험을 벌일 수 있을까. 정부는 윤리학자나 환경학자와 마주 앉아 이 문제들을 검토한 적도 없다.

 이런 맥락에서 질병관리본부가 최근 ‘모기 매개 감염병 토착화 대응 시나리오’ 개발에 착수한 것은 반길 일이다. 동남아에서 뎅기열에 걸린 채 귀국한 환자가 모기에 물리면 그 모기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기 때문에 토착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인데, 2014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뎅기열이 확산된 전례를 감안하면 한국에서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질병관리본부는 다양한 돌발 상황을 상정해 우리의 방역 체계가 과연 그에 견딜 수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험해 주길 바란다. 알베르 카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병은 사라진 게 아니고 책갈피와 방구석에 숨어서 우리가 방심하길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공무원의 상상력이 빈곤하면 혼란은 고스란히 위기로 이어진다.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