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태영호 “최근 10년간 北드라마 안 나와… 한드만 보니까 제작 포기”

입력 | 2017-01-02 03:00:00

[2017 새해특집]탈북기자 주성하가 만난 태영호
남북의 현주소




탈북 기자-방송인과 손잡은 태영호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은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운데)가 북한 출신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왼쪽)와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에 출연 중인 탈북 미녀 신은하 씨와 만나 반갑게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지난해 12월 29일 3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담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아픈 상처가 드러날 때면 가끔 목이 메기도 했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사전 질문 협의가 없었지만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이 답을 해 엘리트 외교관 출신이라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보통 탈북민들은 한국에 온 초기에는 북한에서의 지위에 상관없이 외래어 때문에 의사소통에 애를 먹기 마련인데, 태 전 공사는 한국에서 쓰는 외래어를 이미 꽤 많이 학습한 듯 대화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랫동안 북한에서 외교관으로 살아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레 대답하는 것이 몸에 뱄을 법한데도 그는 스스럼없이 달변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



 ―서울을 경험하면서 느낀 소감은….

 “여태까지 덴마크 스웨덴 영국처럼 선진국 중 발전된 나라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고 한국의 발전된 모습도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와본 서울은 생각보다 훨씬 발전돼 있어 놀랐다. 아직 지하철을 못 타봤는데 타보고 싶다.”

 ―음식은 어떤가.

 “많이 먹어봤는데, 비빔밥이 맛있었다. 임진강에서 맛본 장어도 정말 맛있었다. 북한에선 장어 4, 5점을 놓고도 상당히 비싸게 파는데, 임진강에서 마음껏 먹어봤다. 아쉬운 것은 평양냉면이더라. 유명하다는 몇 곳에 갔는데 평양 옥류관 같은 구수한 육수 맛이 안 났다. 그걸 보니 평양냉면집이나 한번 열어볼까 싶기도 하다.”

 ―남북 음식문화의 차이가 느껴졌나.


 “말이 달라 처음엔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루는 ‘수제비국 먹으러 가자’고 하기에 ‘그게 뭐예요’라고 하니까 밀가루로 만든 거라고 설명하는데 모르겠더라. 가보니 북한에서 ‘뜨덕국’이라 부르는 음식이었다. 백숙탕도 몰랐는데 ‘닭곰’이더라. 놀란 것은 한식당에 가니 반찬을 다 먹으니 또 갖다 줘서 깜짝 놀랐다.”

 ―낯선 환경에 적응은 잘 되나.

 “제일 두려운 게 밤이다. 북에 두고 온 친인척, 동료들 생각하면 새벽 3시까지 잠이 안 온다. 수면제라도 좀 먹을까 했지만 수면제에 손대는 날이면 김정은보다 내가 먼저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 먹었다. 새벽 3시까지 잠이 안 오면 본능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술을 찾게 돼서 술도 다 치웠다. 내가 지금의 고통을 알코올에 의지한다면 알코올중독자가 될 것 같아 강한 마음으로 이겨내고 있다.”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29일 동아일보 본사를 방문했다. 태영호 전 공사가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망명 직후 언론에서 ‘금수저’ 출신 외교관으로 보도했는데….

 “전혀 아니다. 나는 ‘흙수저’로 자수성가했다. 다만 좋은 운은 좀 타고난 것 같다. 어렸을 때 최고위층 자녀들만 뽑는 평양외국어학원에 입학했다. ‘금수저’만 골라 보내는 유학생에 선발돼 중국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국제관계대학에서 고위외교관을 양성하는 특수 교육과정도 마쳤다.”

 ―남북 외교관을 비교해 본다면….

 “(북한 외교관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돼 되도록이면 그들(한국 외교관)을 피하려 했다. 한국 외교관들은 당당하지 않나. 한국 제품이 온 세상에 깔려 있고 유럽에서도 한국은 선망의 대상이다. 공식적인 자리에 가면 한국 외교관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은데, 북한은 같은 코리안인데도 말 거는 사람도, 명함 주며 식사하자는 사람도 없다. 같은 민족인데도 짜증이 난다. 또 북한 외교관은 김정일 부자의 배지를 항상 달고 다니는데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장성택을 죽인 게 진짜냐고 대답 못할 질문을 던지니 피하게 된다.”

 ―북한 내부 관료들과 달리 외교관들에겐 숙청의 공포는 없지 않나.

 “맞다. 김정일 때부터도 외교관이 숙청된 일은 없다. 김정은도 외무성은 못 흔든다. 김정은이 다른 부서는 다 갔지만 아직 외무성엔 가지 않았다. 김정은이 다른 일반 간부들을 대할 때는 항상 자기가 그들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간부들을 뭘 모르는 무식한, 쉽게 말하면 개돼지처럼 보는데 외교관에겐 그렇게 대우하지는 못한다. 김정은이 아이 때부터 해외서 자라면서 외교관들하고 많이 상대했다. 이 사람들이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인터넷으로 세상을 다 알고 있고, 속으로 자길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안다. 거기다 대고 자기가 지시해 봐야 겉으로 네네 하지만 속으로는 비웃는다는 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은 어떤가. 북한 외교관들의 롤모델은 누구인가.

 “최선희는 최영림 전 총리의 딸인데, 함께 공부한 적이 있다. 엄청 뛰어나다. 김정은이 (북한으로선) 잘한 결정 중 하나는 이용호를 외무상으로 기용한 것이다. 이 외무상은 밑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쭉 올라왔고, 외국어도 잘하고 필력도 좋다. 북한 외교관의 롤모델 같은 사람이다.”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29일 동아일보 본사를 방문했다. 태영호 전 공사가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본보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드라마 얘기를 했는데….

 “최근 10년 동안 북한에서 영화 드라마가 안 나온다. 김정은이 아무리 독촉해도 안 된다. 한류가 들어가면서 뼈 빠지게 만들어봐야 주민들이 몰래 보는 한국 영화, 드라마를 이길 수 없으니 작가나 제작진이 아예 포기하는 거지.”

 ―채널A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장면은….

 “몇 년 전에 난방비 아끼느라 집에서 어린 아기를 업고 솜옷 입고 사는 탈북여성이 방영됐다. 북에서 뜨끈뜨끈한 집에서 불 환하게 켜고 사는 게 소원이었는데 먼저 온 탈북자들이 그렇게 열심히 사는 장면을 보고 ‘어, 그게 아니네. 나도 한국 가서 저렇게 절약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북한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만 보고 한국에선 1층에서 2층 올라가는 계단 있는 집에서 사는 줄 안다.”

 ―집안일은 잘하나. 경제권은 누구에게 있나.

 “그건 자신 있다. 북에서 설거지는 안 해도 아침에 일어나 집 청소, 다림질, 쓰레기 버리는 거 다 내가 했다. 경제권도 당연히 아내가 다 갖고 있다. 한국에서 살려면 (아내가 모르는) 비자금이 좀 있어야 한다던데, 이젠 그 비자금을 마련하는 법을 연구해야겠다.”

 ―통일되면 뭘 하고 싶나.

 “당연히 평양에 돌아갈 것이다. 건설을 좀 해보고 싶다. 평양은 다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는데 서울처럼 보란 듯이 건설하고 싶다. 집을 좀 짓고 싶고, 도로 철도 이런 것도 한국 건설사들과 힘을 합쳐 짓고 싶다. 서울부터 단둥까지 고속도로를 쫙 깔면 중국인 관광객들로 꽉 찰 것 같다. 우리 민족이 가만히 앉아서 돈벌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태영호 공사 - 주성하 기자 150분 대담 全文 전격 공개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