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인가, 시내에 나갔다가 유니클로에 들렀다. 실내용 슬리퍼를 고르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관절이 안 좋은 데다 기온이 내려가면서부터는 발가락까지 마디마디 시린 것 같다는. 그날 두툼하고 푹신푹신한 초록색과 빨간색 체크무늬 슬리퍼 두 개를 사갖고 와 엄마에게 한 켤레 드렸다. 생각해 보니 엄마께 드린 선물이라면 그게 가장 최근의 것이고, 슬리퍼라면 나도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다.
2년 전 이맘때 로마의 오래되고 추운 숙소에서 지냈다. 사피엔차 대학에서 한국문학으로 논문을 쓰던 이탈리아 학생과 가깝게 지냈는데 어느 날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종이로 둘둘 만 꾸러미를 내게 주었다. 몇 번인가 내 숙소에 와 본 적이 있던 그녀 눈에 거실의 차가운 돌바닥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종이엔 부직포로 만든 슬리퍼 한 켤레가 싸여 있었다. 그 후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만날 때마다 눈여겨보게 되었다. 로마를 떠나기 전날 3개월 동안 읽었던 한국 소설과 시집들을 모두 그녀에게 주었다. 선물이라고 새로 산 것은 하나도 없어서 그녀가 그 책들을 받고 좋아하던 표정을 더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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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체크무늬 슬리퍼를 신은 엄마가 청소를 하느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인다. 그 9900원짜리 슬리퍼를 사면서 실은 기분이 조금 좋았던 것 같다. 받는 사람한테 꼭 필요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생일까지 며칠 더 남았으니 일단 엄마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주의 깊게 살펴볼 생각이다. 그리고 송년모임에서 만날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작고 쓸모 있는 ‘프레젠트’에 관해서도.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