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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헌법 가치 바로세우기 ‘역사적 심판’ 시작됐다

입력 | 2016-12-17 03:00:00

두 번째 대통령 탄핵 심판 돌입한 헌재




 2004년 잊지 못할 성인식을 치렀던 헌법재판소가 12년 만에 또다시 칼자루를 쥐었다. 칼 끝이 향하는 쪽은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인 박근혜 대통령이다.

 1988년생인 헌재가 16세가 되던 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초유의 탄핵심판에서 헌재의 기각 결정은 정치지형을 단번에 바꿔 놨다. 하지만 이후 헌재는 골치 아픈 정치권 이슈를 넘겨받아 사법적으로 소화시키면서 정권의 ‘전가의 보도’라는 오명을 샀다. 서른을 앞둔 헌재가 지금처럼 정치 분쟁을 교통 정리하는 조역에 그칠지, 아니면 혼란스러운 정국을 종결짓고 국민의 가슴에 헌법적 가치를 아로새길 주역이 될지는 스스로의 결정에 달렸다고 헌법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명권자 성향 따라 보수화된 재판관 구성

 박근혜 정부가 집권 첫해인 2013년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헌재에 청구할 당시만 해도 지금의 5기 재판부(2013∼2019년)는 제대로 된 정치적 사건을 맡은 적이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굵직한 정치 현안을 처리했던 3기 재판부(2000∼2006년)와 비교해 성향이 어떤지 재판관 면면이 주목을 받았다.

 헌재 재판관들은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여, 야, 여야 합의로 각각 1명)가 3명씩 지명하는데 이명박-박근혜 두 보수 정권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보수화됐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지낸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2011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뒤 2013년 4월 박 대통령이 검찰 출신 인사로는 처음으로 헌재소장에 지명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공안 헌재’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역시 검찰 공안통 출신으로 새누리당 추천을 받은 안창호 재판관과 박 대통령이 추천한 조용호 서기석 재판관은 보수적인 판결을 할 것으로 점쳐졌다. 여야 합의나 대법원장 추천으로 임명된 나머지 4명의 성향에 따라 위헌, 정당해산, 탄핵 등 주요 결정의 정족수가 6명인 헌재의 판단이 갈리는 형국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추천을 받은 2명 중 대구경북 지역 ‘향판(鄕判)’ 출신인 김창종 재판관은 뚜렷한 보수 색채를 띠었지만, 다른 한 명인 이진성 재판관은 이정미 재판관(이용훈 전 대법원장 추천), 김이수 재판관(유일한 야당 추천)과 함께 진보적인 의견을 많이 냈다. 여야 합의로 추천된 강일원 재판관 역시 사안별로 다양한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사전 신고 없이 시위를 벌인 주최자를 처벌토록 한 집시법 조항에 대해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강일원 재판관 등 4명이 위헌 의견을 내는 경우도 나왔다. 하지만 통진당 해산심판(2014년)과 교원노조법 위헌법률심판(2015년) 등 주요 사건에서 헌재의 결정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쪽으로 쏠렸다.

박근혜 정부가 반가워 할 판결 많아

 첫 번째 ‘성향 리트머스’ 사건이었던 통진당 해산심판의 시점은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부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파문 등으로 수세에 몰린 때였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정부 대표로 나서 “통진당은 대한민국을 붕괴시키려는 암적인 존재”로 몰아붙였다. 결과는 정부의 완승. 당시 헌재는 “(통진당의 활동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하는 등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재판관 8 대 1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했다.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정당해산 여부는 원칙적으로 선거 등 정치적인 공론의 장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2014년 6·4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의 대거 당선으로 교육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제재가 먹히지 않을 때도 헌재는 정부에 유리한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5월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규정한 근거인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해고된 교원 등 교원이 아닌 사람을 조합원 자격에서 배제하는 것이 지나친 단결권 제한이라고 볼 수 없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에도 소수의견은 김이수 재판관뿐이었다. 전교조의 노조 지위를 박탈한 헌재 결정에 야당과 시민단체뿐 아니라 일부 국제기구에서도 “노조에 대한 탄압이 우려된다”며 반발했다.

김영한 비망록 공개로 헌재 공정성 도마 위에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 정부의 손을 들어줬던 헌재의 이력 때문에 아직도 박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헌재 재판관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공개된 김영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비망록에 통진당 해산심판에 관한 메모가 발견되면서 청와대와 헌재 사이 ‘사전 교감’ 논란까지 일고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헌재 결정 2주 전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통진당 해산 판결-연내 선고”를 언급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비망록에 나온 것이다.

 황 대통령 권한대행과 새로 임명된 조대환 대통령민정수석 모두 박한철 헌재소장과 사법연수원 동기(13기)라는 점도 면죄부를 받기 위한 포석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박 소장의 임기는 내년 1월 31일까지다. 

 헌재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헌재 스스로 ‘정권의 방패막이’라는 오명을 벗고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절호의 찬스라는 기대도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헌재가 정치적 판단보다 헌법적 해석에 초점을 맞춘다면 스스로의 위상을 진일보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역사에 기록될 기명 의견을 내야 할 헌법재판관들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법조인으로서 양심에 걸맞은 결정을 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동진 shine@donga.com·권오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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