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충현 개인전 ‘자리’
유채화 ‘사다리’(2016년) 앞에 앉은 노충현 작가. 그는 “우리 후면 벽체는 원래 창살인 것을 재구성한 요소다. 원숭이 우리는 특히 다른 동물 것에 비해 폐쇄적”이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내년 2월 11일까지 서울 서초구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리는 노충현 작가(46)의 개인전 ‘자리’에 걸린 유채화 13점의 피사체는 ‘동물이 없는 동물원 우리’다. 노 씨는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 등의 동물 우리를 촬영한 사진에서 공간과 구조물을 선택해 조합하고 캔버스로 옮기며 동물들을 지워냈다.
관람객이 마주하는 것은 얼기설기 밧줄로 엮은 나무기둥, 덩그러니 허공에 매달린 폐타이어 그네, 동물을 그린 우리 속 벽화 등의 이미지다. 설명 없이 작품부터 만난 이 중에는 동물원 공간을 담았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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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풍경을 담은 그림에 동물을 넣으면 보는 이의 시선 초점이 동물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노 씨는 공간을 보게 하려면 그림에서 동물을 빼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 놓고 보니 ‘사용자’를 지워냈을 때 성격이 불분명해지는 전형적인 근대 도시 공간이 드러났다.
“꼬마 때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와서 죽 이 도시에서 살아왔다. 서울에서 거주하기의 복잡다단함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편이다. 마음이 복잡해질 때 한강공원에 자주 나간다. 그곳에서 그때그때 심경과 공명하는 공간을 포착해 그림으로 옮겨 왔다. ‘자리’보다 더 꾸준히 이어 온 그 연작에 ‘살풍경’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
도시 공간에서 그리 예쁘지 않은 구석들을 찾아내 해석하는 노 씨의 작업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에 가 닿는다. 그는 동물원 우리의 부조리를 현대 서울 사람들의 생활공간이 짊어진 딜레마에 연결시켜 바라본다.
“첫 시도 후 ‘자리’ 연작은 오랜 기간 길을 잃고 멈췄다. 2년 전 세월호 참사 뒤 ‘주체가 사라진 공간’의 의미를 돌아보며 작업을 재개했다. 도시 공간은 시선의 범위를 가두고 자유를 제한한다. 멀리, 가까이, 높게, 낮게…. 낮은 자리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숨통을, 그나마 한강에서 찾곤 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