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국정농단, ‘法대로 해보자’ 뒤엔 어떤 마음 있는지 물러날 때를 알았던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반전 드라마는 꿈일까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사회를 한 편의 거대한 연극에 비유한 바 있는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사회가 부여해 준 각본에 따라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는 배우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상황에 따라 상대가 기대하는 모습에 맞추어 자신의 ‘인상관리(impression management)’ 작업을 수행하게 되는데, 얼마나 그럴듯하게 인상을 관리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역할 수행 능력이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한데 공교롭게도 우리네 뒷모습만큼은 인상 관리의 예외 지대에 머물러 있음이 분명한 듯하다. 실제로 나의 친구는 성실한 선생이요 알뜰한 아내이자 자상한 엄마이지만, 뒷모습엔 시도 때도 없이 일상을 벗어나고픈 방랑기와 어느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외로움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앞모습은 항상 예의 바르고 겸손함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뒷모습에선 거만함과 오만함이 잔뜩 묻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고, 선생 앞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범생이지만 돌아서는 뒷모습엔 호시탐탐 일탈을 꿈꾸는 자유로운 영혼의 제자도 여럿 보았다.
투르니에의 책 덕분인가, 요즘 들어 부쩍 대통령의 뒷모습이 궁금해온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 전까지’ 국민의 눈앞에 노출된 공식 무대에서 대통령 역할을 연기하고 대통령 역할에 맞추어 인상 관리를 해 온 그 모습 말고,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뒷모습이 보고 싶다.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후’ 20대 초반부터 현재까지의 대통령 삶이 통째로 의구심의 대상이 되고 말았기에, 거짓과 위선을 허하지 않을 대통령의 진솔한 뒷모습이 더더욱 궁금하다.
아무도 믿지 못한다면서 특정인만큼은 무조건 무작정 무한대의 믿음을 보여준 불가사의한 앞모습 뒤엔 어떤 실체가 감추어져 있는지 보고 싶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이 여전히 상대의 인격에 대한 최고의 칭송인 문화에서, 국민 정서는 아랑곳없이 ‘법대로 해보자’는 대통령의 오기 뒤엔 어떤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알고 싶다. 그렇다고 희망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퇴임 후에도 오랜 기간을 전직 대통령으로 남아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에.
진정 바라건대는 마지막 순간 물러날 때를 알았던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희망한다. 그리하여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 뒷모습의 자취가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으로서 반전의 기회를 안겨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설혹 재임 기간에 실정을 폈다 해도 그 충정만큼은 의심받지 않는 대통령, 혹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을지언정 진정성과 진솔함으로 인해 너그러이 용서받을 수 있는 대통령, 돌아서는 뒷모습에 최선을 다했노라는 당당한 소신과 더불어 국민을 향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을 우리도 간절히 원한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