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인재쟁탈 만연… 떠나지 못하게 협박-회유 보통 국경까지 전송받고 떠난 신하, 옛 군주 죽자 상복 입어 존경 표시
요즘을 ‘고용 불안의 시대’라고 하지만 고용 불안은 2000년도 더 이전인 춘추전국시대에도 심했다. 당시 군주들에게는 인재 영입이 최우선 과제였다. 나라의 자산이라고는 인적 자원이 전부였던 시절에 한 명의 유능한 인재를 잃는다는 것은 지금의 기업에서 유능한 직원 한 명이 떠나가는 것보다 훨씬 치명적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한나라와 진나라 사례를 들 수 있다. 진시황은 한비자를 영입해 천하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반면 그를 보내 버린 한나라는 전국 7웅 중 가장 먼저 멸망했다.
이처럼 인재가 중요한 시대였으니 비전을 가진 군주라면 필요한 인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다른 나라보다 더 좋은 대우를 보장하는 것은 기본이다. 국정을 연구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을 제공하고 그들의 말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때로는 떠나지 못하도록 회유하고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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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있어 신하가 다른 나라로 떠나면, 군주는 다른 신하로 하여금 떠나가는 국경까지 전송하고, 또 그가 가는 나라에 먼저 기별해서 잘 부탁해 주며, 떠난 지 3년이 돼도 돌아오지 않으면 그의 재산을 환수하니, 이것을 세 번 예(禮)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떠나간 신하가 그 군주가 죽었을 때 상복을 입습니다. 그런데 지금 군주들은 신하가 사정이 있어 떠나려고 하면, 군주가 그를 잡아서 협박하고, 또 그가 가는 곳에 그에 대한 모진 말을 해 놓고, 떠나는 날 곧장 그의 재산을 환수해 버리니, 이것을 원수라고 합니다. 원수를 위해서 누가 상복을 입어 주겠습니까?”
떠나가는 신하를 예로 대우하면 그 군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도 이전에 모시던 군주가 죽었을 때 상복을 입을 정도로 존경하게 된다는 것이다.
떠나가는 부하를 위해 예를 다하기란 쉽지 않다. 마지막까지 잘 대접해 주고 환송하며, 그가 옮겨 가는 회사에 미리 연락을 취해 잘 부탁해 두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려 주는 일은 오늘날의 기업의 생리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경쟁 업체로의 이직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와 적대적인 관계를 맺어서 좋을 일은 없다. 내가 그를 마지막까지 잘 대우해 준다면, 그는 이전 군주를 위해 상복을 입어 주는 신하의 마음을 가질 것이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muhayu@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