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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의 프리킥]“박지만에게조차 ‘최순실을 통하라’고 했다”

입력 | 2016-10-28 03:00:00



허문명 논설위원

 나라를 걱정하는 이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고 있다. 10·26 37주기였던 그제 저녁 모임에서 만난 분들은 모두 한때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해 박근혜 대통령과도 오랜 기간 가까웠던 원로들이었지만 ‘하야(下野)’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퍼즐이 맞춰진 느낌

 대통령 당선을 도운 이른바 7인회 멤버였던 원로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길밖에 없는 것 같다. 본 적은 없지만 최순실이란 사람은 단지 시중을 드는 몸종 수준이 아니라 대통령의 마음을 홀린 영적인 존재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지금 이런 상황이 설명이 안 된다. 당선 후 점심 초대는커녕 고맙다는 전화 한마디 없는 대통령으로부터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장관들의 대면보고도 받지 않는 비정상적 통치스타일 뒤에 ‘최순실’이 있었다 생각하니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또 다른 참석자는 “보수가 이제 박근혜를 버릴 때가 됐다. 대통령이 빨리 하야하고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총리가 권한을 위임받아 다음 선거를 치르면 된다. 그게 보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도 했다. 모두 대통령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동안 가졌던 일말의 애정조차 거둔 듯했다. 대통령을 향한 민심의 반발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셌다.

 박 대통령이 당 대표일 때 비서실장을 지냈던 정치인은 “죄인이 된 심정”이라며 “간신들이 대통령과 나라를 망쳤다. 저질 3류들에게 나라가 휘둘렸다 생각하니 잠이 안 온다. 문고리 3인방은 모두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개탄했다.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을 경호했던 전직 경호원은 기자와 만나 “박정희 대통령은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최태민이 그놈을 당장 잡아오라’고 소리쳤다. 결국 친국(親鞫)까지 했지만 어머니를 흉탄에 잃은 딸이 오죽 의지할 곳 없으면 저럴까 마음이 약해졌다”고 전했다. 최순실의 수법은 ‘박근혜’를 앞세워 비선에서 전권을 행사하며 기업에 헌금을 강요했던 아버지(최태민)와 판박이다.

 답답한 마음에 박지만 EG 회장과 친분이 있는 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회장이라도 민심을 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이미 박 회장은 할 말 있으면 ‘최순실을 통해 하라’는 말을 들어왔다. 나설 상황이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항간에는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거칠고 험하고 천한 말들이 돌아다닌다. 어떻게 이런 상태에서 통치에 대한 권위를 세울 수 있겠는가. 내각과 청와대의 인적 쇄신은 불가피해 보이지만 과연 누가 침몰하고 있는 배에 올라타려고 하겠는가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안보가 휘둘리면 안 된다

 대통령은 사과를 잘 안 하는 사람이다. 25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선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을 보며 “뭔가 쫓기고 있다. 급했다. 실체적 진실은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재앙이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런 상황을 제일 즐길 사람은 북한의 김정은이 아닐까. 전방이 걱정된다. 10·26 때 박근혜 대통령의 첫마디가 “전방은요?”였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대선에서 그의 안보본능을 믿고 기꺼이 한 표를 던졌던 지지자가 꽤 많았을 것이다.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놓더라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만은 직접 챙겨야 한다. 자신이 없다면 황교안 총리에게 위임이라도 해서 말이다. 국민 모두 눈 부릅뜨고 전방을 응시할 때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