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 펴낸 소설가 정이현씨
정이현 씨는 “현실의 누구나 ‘문제적 인물’ ‘소설적 인물’ 아닌가”라면서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문득 흘리는 말 한마디에서 작품 속 인물의 성격을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정 씨가 최근 펴낸 ‘상냥한 폭력의 시대’(문학과지성사·사진)는 ‘오늘의 거짓말’ 이후 9년 만의 소설집이다. 침묵했던 게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간 ‘너는 모른다’ ‘안녕, 내 모든 것’ ‘사랑의 기초’ 등 활발하게 장편을 펴냈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프리랜서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았다.
‘상냥한…’의 단편 7편을 하나로 묶는 주제는 ‘작가의 말’에 담겨 있다.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다. 상처의 모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누구든 자신의 칼을 생각하게 된다.’
겉으로는 예의 바르게, 세련되게 대하지만 실은 비하하고 멸시하는 것, 작가가 ‘상냥한 폭력’이라고 부르는 행위다. 도시의 싱글 여성이었다가 40대 중반이 된 작가가 보기에, 우리가 사는 현대란 이런 상냥한 폭력의 시대다.
“(소설집) 전체를 반복해 읽어보니, 서로의 진심과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상처와 모멸을 주고받는 인물들이 선명하더라. 우리 시대의 ‘새로운’ 폭력의 모습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하다가, ‘상냥한 폭력’이라고 해봤다. ‘예의 바른’이나 ‘친절한’, ‘아무렇지 않은’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도 좋겠다.”
“초기의 소설들을 좋아한다는 20대 여성을 지금도 종종 만난다. 대학 강의실에서 이 소설을 놓고 남녀 학생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고도 하더라.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20대 여성들의 삶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구나 싶기도 하고.”
위선과 위악이 섞인 이 시대를 지나 정 씨가 소설을 통해 어떤 시대의 군상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