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 커크 함장의 리더십 “위기 대면이 우리 운명” 일깨워 미래의 커크 함장 될 청년들 열정페이 시달리다 한국 떠나 ‘봉건시대에도 일어나지 않을’ 국정 농단에 요동치는 나라… 분노 포기한 청년이 더 걱정이다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우주함대 USS 엔터프라이즈호의 커크 함장은 대원들을 이끌며 수많은 위기와 도전에 직면한다. 그때마다 그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뿐 아니라 금과옥조(金科玉條) 같은 리더십의 명문장을 쏟아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모든 대원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커크 함장은 “위기와 대면하는 것은 우리들의 업무다. 그것이 우리들의 운명이다. 우리가 엔터프라이즈호에 승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라고 외치며 그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곤 했다.
연세대 리더십센터에서 졸업을 앞둔 학생들을 위한 ‘리더십 세미나’ 개설을 의뢰받았을 때 떠오른 생각이 스타트렉 파티였다. 그래서 필자는 5년 전 학부 졸업반 학생들을 위한 ‘스타트렉 리더십’ 세미나를 개설했다. 토론 수업으로 기획했기에 30명으로 수강 인원을 제한했고 수강생의 반 정도가 졸업을 앞둔 경영학과 학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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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기가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학생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애써 제출한 입사원서들이 가을 낙엽처럼 차가운 취업의 거리에 나뒹굴었기 때문이다. 학기가 끝난 12월 중순까지 30명 중에서 2명만이 취직에 성공했다. 나머지 28명은 조용히 졸업장을 받고 학교를 떠났거나 휴학을 신청하며 마지막 젊음의 바리케이드를 쳤다.
M이란 학생은 그 스타트렉 수업에 참여한 경영학과 여학생이었다. 단언컨대 대한민국의 상위 1% 안에 드는 명민한 학생이었는데, 졸업 후 ‘열정 페이’에 내몰리며 크고 작은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그래도 선생이라고 내게 면담 신청을 해서 만났더니, 얼굴에 작은 흉터가 나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인턴을 하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대상포진에 걸렸다는 것이다. M이 인턴으로 일하면서 받았던 대우는 노동착취 수준이었다.
학교 부근 식당으로 데려가 불고기를 구워주며 위로해보려 했지만 식탁을 마주하고 있던 M이 내뱉은 말에 고기를 집던 내 젓가락질이 얼어붙고 말았다. “교수님, 스타트렉은 그냥 상상의 세계였던 것 같습니다. 여기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아 홍콩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 직장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인사드리려고 왔어요.”
‘봉건시대에도 일어나지 않을’ 엄청난 사건 때문에 세상이 요동치고 있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도 믿지 않을’ 국정 농단이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이런 일에 분노하지 않는다. ‘민중은 개돼지’라 불러도, ‘능력 없는 너희 부모를 욕하라’는 신분의 저주가 난무해도 젊은이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이미 포기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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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