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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도움’만 인정한 사과… 靑 인적쇄신 요구엔 침묵

입력 | 2016-10-26 03:00:00

[최순실 게이트/朴대통령 사과]朴대통령, 개인문제 첫 대국민 사과




침통한 참모들… 우병우는 배석 안해 25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대통령비서실 간부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 김재원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김성우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5일 오후 3시 43분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 선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네이비색 재킷과 정장 바지 차림의 박 대통령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476자 분량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1분 35초에 걸쳐 읽어 내려갔다. 발표 말미에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맺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취재진의 질문을 받지 않은 채 허리 숙여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다. 박 대통령이 본인의 문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민이 많이 놀랐을 테니 직접 설명을 드려야겠다”라며 참모들에게 준비를 지시했다고 한다. 앞서 전날 저녁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가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 봤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새누리당 내 친박(친박근혜)계는 청와대에 ‘박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식사 도중 소식을 접한 이정현 대표는 정진석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대응 방법을 논의한 뒤 청와대 관계자에게 연락해 “박 대통령이 회의 석상이 아닌 직접 국민 앞에서 진솔하게 경위를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에서 최 씨와의 인연, 대통령 취임 전과 후의 최 씨의 역할, 최 씨에게 연설문을 보내 준 이유 등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오랜 인연으로 대선 때 연설·홍보에서 도움을 받았고, 취임 초반까지 최 씨의 의견을 들었다는 취지다. 이번 사안은 박 대통령 본인의 책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연설문을 최 씨에게 전달한 청와대 참모를 문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청와대의 다른 참모는 “연설문 전달 과정에서 법을 위반한 부분이 있는지는 어차피 수사를 통해서 밝혀지지 않겠느냐”라고 말해 문책이 있더라도 수사를 지켜보면서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내비쳤다. 즉각적인 청와대의 인적 쇄신을 요구한 새누리당의 의견을 사실상 수용하지 않은 셈이다.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이날 오전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해명을 할 예정이지만 책임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을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어물쩍 넘어가면 큰일 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이후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에게도 연락해 “박 대통령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국민에게 사과하고 책임자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는 등 환부를 도려내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밝혀야 한다”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사과문에서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제외하고 특정 현안에 대해 춘추관에서 취재진과 대면한 건 지난해 8월 6일 노동 개혁 필요성 등을 강조한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 발표 이후 1년 2개월 만이다. 이날 낮에는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와의 정상회담 및 오찬 등의 일정이 있어서 회견 시점이 오후로 정해졌다.

 전날 밤 보도가 나온 이후 청와대는 계속 침울한 모습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힘이 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 씨 문제가 불거지자 ‘식물 청와대’로 추락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 대통령이 사과를 한 뒤에도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청와대의 다른 참모는 “대통령 사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사안은 아닌 것 같다. 앞으로 무슨 내용이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이라며 자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전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고,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직전인 이날 오후 2시 비가 내리는 청와대 모습을 담은 사진과 글을 게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누리꾼들은 “나라의 심각한 사태를 모르는 건지 할 말이 없네요” 등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장택동 will71@donga.com·홍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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