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하루 제주시로 내려왔다. 어딜 가나 인근 사찰을 찾는 것을 즐거움으로 아는 분이라 떠나는 날 아침에 서둘러 관음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변변한 우산도 없는데 택시가 한라산 북쪽 기슭으로 접어들자 그쳐 있던 비가 폭우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나를 절 입구에 내려준 나이 지긋한 택시 기사가 그 비를 맞곤 트렁크 쪽으로 뛰어가더니 우산 두 개를 꺼내 우리에게 내밀었다. 빌려줄 테니 어서어서 다녀오라고.
튼튼해 보이는 파란 우산은 어머니께 드리고 나는 투명 비닐우산을 쓰고 돌길을 걸어 대웅전으로 올라가는데 아만다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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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부터 아만다는 유방암 때문에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스스로 기분을 좀 낫게 만들기 위해서 병원에 갈 때는 ‘옷을 잘 차려입고 화장도 하고 하이힐을 신고’. 새 소설을 못 쓰고 있는 게 가장 힘들다고 아만다는 메일에 썼다. 그 편지를 읽는데 눈물이 나버렸다. 그때 어떻게든 그 비닐우산을 트렁크에 넣어줬다면 좋았을 텐데.
나도 남몰래 갖고 싶은 비닐우산이 있다. 1970년대, 내 몫의 우산 하나가 없어서 초등학교 때 자주 쓸 수밖에 없었던 하늘색 대나무 비닐우산. 손잡이 끝은 빨간색 비닐로 감겨 있었던가. 구멍이 뚫려 있어서 받쳐 든 우산을 자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살과 우산대가 대나무라는 건 어린 마음에도 꽤나 운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그래서인가 요즘도, 이제는 박물관이나 시대극의 소품으로밖에는 볼 수 없는 그런 추억의 우산이 하나 갖고 싶어지는 것이다.
때때로 맑은 날에도 우산을 펼 때가 있다. 우울해지거나 좋지 않은 일이 쏟아지려고 할 때, 나쁜 감정들이 둘러싸려고 할 때 머리 위로 마음의 우산을 하나 쫙 펴곤 한다.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