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가훈-좌우명 써주는 김남기씨
‘대숲에서 놀다’ 기획초대전 김남기 씨는 29일까지 전남 담양군 담양읍 한국대나무박물관 갤러리에서 자신의 작품 40여 점을 전시하는 ‘대숲에서 놀다’ 기획 초대전을 열고 있다. 김 씨는 갤러리에서 수시로 관람객들에게 서화가 들어 있는 가훈, 좌우명을 써 주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한국대나무박물관 입구에 자리한 갤러리에서는 한 화가가 대구에서 온 여행객에게 가훈을 써주고 있었다. 여행객이 화가에게 부탁한 가훈은 ‘근자필성(勤者必成)’. ‘부지런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김남기 씨가 1일 전남 담양군 담양읍 한국대나무박물관갤러리에서 진행되는 기획초대전 ‘대숲에서 놀다’의 전시장 입구에서 배법연 씨 가족에게 서화 가훈을 써 주고 있다. 김 씨는 배 씨 가족들이 서화 가훈을 보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작은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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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염주종합체육관에서 각종 체육시설을 10년 동안 관리하다 도심에서 보기 힘든 참새를 오랫동안 지켜봤습니다. 이후 역도나 수영 등을 하는 참새 그림을 그려 봤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고 싶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김 씨는 그림에 참새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40년 넘게 공직생활을 하면서 붓을 놓지 않았다. 전남 나주시 세지면에서 태어난 김 씨는 어릴 적 아버지(84)가 쓰던 붓글씨를 흉내 내는 것을 좋아했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광주로 유학을 와 숭일중, 석산고를 다니면서 나름 ‘명필’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당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연애편지였다. 글씨체가 좋았던 그는 친구들에게 연애편지 대필(代筆)을 많이 해줬다. 고교를 졸업하고 1976년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전남도청 여천지구 출장소(현 여수시청의 전신)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공직 생활을 하면서 진짜 명필이 되고 싶었다. 행초서(行草書) 대가인 남재 송전석 선생 문하에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였다. 서예를 배우던 중 1979년 군에 입대해 논산훈련소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차트병사로 2년여 동안 복무했다. 제대 후 다시 공직 생활을 하면서 광주 서구청, 광주시청을 거쳐 1993년 광주도시공사로 자리를 옮기는 동안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 선생이 설립한 연진미술원에서 서화 과정을 마쳤다. 이후 장강 김인화 선생에게 문인화를, 석운 김재일 선생에게 한국화를 배웠다. 문인화는 옛날 사대부들이 많이 그리던 것으로 난, 매화 등 일상생활 속 소재가 많다. 동양화로 불리던 한국화는 주로 산수 등 풍경을 화폭에 담는다. 그에게 종산이라는 호를 지어준 이는 첫 스승인 남재 선생이다. ‘음침한 골짜기에서 큰 소리를 지르니 맑고 호탕한 기운이 든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김 씨는 낮에는 공직자로 일하고 밤에는 자신의 화실에서 서화에 몰두했다. 광주 남구 백운동에 마련한 종산 서화연구원에서 매일 밤 네다섯 시간씩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글쓰기나 그림그리기 방법도 가르쳐줬다.
그가 각종 행사장에서 무료로 가훈과 좌우명을 써주며 재능기부를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가훈과 좌우명 글귀 한쪽에 문인화를 그려주고 낙관도 찍어준다. 행복한 재능기부에 나선 것은 아들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현재 대기업을 다니는 큰아들(30)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책상 위에 아버지가 써준 ‘나는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 할 수 있다’는 글귀를 자주 보곤 했다. 김 씨의 아들은 군에 입대해 생활관에 붙어 있던 같은 내용의 글귀를 보고 군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김 씨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좋은 글귀를 자주 접하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에 스며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다른 사람들에게 성찰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좋은 글귀를 써줘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이런 생각으로 서화가 더해진 가훈과 좌우명을 써주는 일을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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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동안 써준 가훈과 좌우명은 족히 5만 장이 넘는 것 같다고 했다. “서화가 함께 담겨진 유일한 가훈과 좌우명이 5만 가구에 걸려 있는 셈입니다. 사람들이 좋은 글귀를 보고 마음에 새기면서 삶이 풍요로워진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붓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김 씨의 진심이 담긴 한마디였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