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인 것의 사회학/기시 마사히코 지음/김경원 옮김/236쪽·1만3800원·이마
사망 후 작품이 알려진 미국 화가 헨리 다거(1892∼1973)의 ‘비현실의 왕국에서’. “존재했지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것의 가능성”에 대해 기술한 부분에서 언급됐다. 동아일보DB
118페이지를 넘기며 그 기억이 떠올랐고, 위로가 됐다. 나는 분명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다수의 주변 관객들과 달리 주인공을 따라 박수치고 노래하지 않았을 뿐이다. ‘언제 어디서든 대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게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배려’라 확신하는 독자라면 굳이 이 책을 읽지 않는 편이 좋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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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올해 49세의 일본 교토 류코쿠대 사회학부 교수다. 다양한 층위의 사람을 만나 진행하는 인터뷰를 연구와 생활의 밑천으로 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인터뷰 작업을 ‘바다 잠수’에 비유했다. 차별받는 사회적 소수에 주목하지만 “근본적 지점에서 나는 다수 쪽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식의 거만한 얄팍함은 없다.
하지만 이야기 함량이나 문장의 리듬감이 균일한 편은 아니다. 애매하게 포장한 위선의 낌새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한국어판 서문과 맺음말에 스스로 “요령부득인 데다 똑 떨어지는 답도 없는 흐리터분한 책이지만 읽어주시면 좋겠다”라고 고백했다. 관습적 규범에 엄숙히 순종해 ‘바르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독자, 타인과의 신체적 접촉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타인에게 관심 한 톨 없는 냉담한 이라고 믿는 독자는 애초에 펼쳐들지 않길 권한다.
부부싸움으로 괴롭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온 친구에게 마침 읽어 넘기던 부분을 보내줬다.
“자유라는 말은 선택지가 충분하다든가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겨우 버티고 있는 꽉 막힌 현실에서 딱 한 가지 뭔가가 남겨져 존재한다. 그런 게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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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균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