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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의 음악상담실]이별의 상처를 치유하는 타인

입력 | 2016-10-01 03:00:00

<22>Nell의 ‘기억을 걷는 시간’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녀는 떠났지만, 난 아직도 그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니 그녀와의 시간과 그녀의 잔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디서든 그녀의 모습이 보이고, 어디서든 그녀의 음성이 들립니다. 간절히 그녀와 다시 만나기를 원하기 때문이죠.

 인간은 대부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살아갑니다. 주의집중의 우선순위 때문이죠. 인간의 감각 시스템은 초당 수천만 개의 정보를 받고, 그 정보들을 즉각적으로 처리하며 살아갑니다.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하여 처리할 수 없죠.

 그래서 미리 생각하고 있던 것을 중심으로 대충 빨리 처리합니다. 없어도 된다고 판단되면 선택적으로 막아버리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없는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하죠.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쉽게 오류를 일으킬 수도 있죠. 더구나 간절히 염원하며 그것을 계속 찾고 있으면, 꼭 미치지 않았어도 환상을 보거나 환청을 듣게 됩니다.

 얼굴이나 음성, 혹은 다른 어떤 기억을 상기하고 확인하는 과정은 인출 단서에 의해 시작됩니다. 무엇인가를 떠오르게 하는 단서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일 수도 있고,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특정한 감정적 혹은 신체적 상태, 즉, 내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단서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예상하면 그 단서를 찾아 나서고, 너무나 보고 싶기에 이 세상 모든 것이 그것이 아닐까 하며 집착하다가, 아예 염원하는 그것을 보는 환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반면, 그 단서에 의한 결과가 두렵고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 때엔 그 단서를 회피합니다. 그러나 너무 무서워서 다른 것들이 그것으로 보이고, 그것만이 있는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깜짝 놀라기를 반복하고, 어딜 가도 솥뚜껑만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극복 혹은 치료는 예상 착오(prediction error)와 보상의 기대(reward expectation)를 계속 수정하는 것입니다. 늘 ‘예전에는 이러면 좋거나 나쁜 것을 피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구나, 변해야 하겠구나!’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죠.

 보상의 기대와 예상 착오의 인식은 전두엽에서 이루어집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쉽지 않죠? 이성은 감정을 거의 이기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그 과활성화된 감정을 가라앉혀줄, 희석시켜줄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감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나를 위하는 다른 사람에게서 오죠.

 넬은 노래합니다. 아직도 너의 소리를 듣고, 아직도 너의 모습을 보고, 아직도 너의 손길을 느낀다고. 오늘도 난 너의 흔적 안에, 너의 시간 안에 살아간다고.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에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곳에 네가 있다고. 너도 나와 같으냐고? 아마 그 ‘너’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고, 한참을 더 아파한 후에야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그 흔적들을 다 기억하고, 그 시간을 다시 살고, 혼자 그 무게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너의 이름을 불렀던 거야. 미안해 너를 잊지 못해서. 조금만 더 이해해줘. 최선을 다해서 잊으려 노력하고 있으니까.”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