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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살다/온수진]햇빛을 독차지하는 마당의 가치

입력 | 2016-09-13 03:00:00


한옥의 가장 큰 장점은 자연을 담아내는 마당이다. 집 안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이웃끼리 정을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 된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예전에 살던 집은 세 방향이 숲에 면한 서울 북악산 자락 부암동 숲속 빌라 3층이었다. 창엔 햇살이 가득하고 맞바람이 불어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집 주위에 자연이 가득했다.

2년 반 전 인왕산 자락 서촌 체부동의 작은 한옥으로 이사했다. 전체 면적은 전과 같은 80m²이지만 건평은 43m²이다. 60년 된 ‘ㄷ’자형 한옥을 욕실과 싱크대를 빼곤 전통방식으로 대수선했고, 혼수였던 침대와 장롱을 비롯해 많은 물건을 버렸다.

한옥에 산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한옥으로 이사하니 어때?”라고 꼭 묻는다. 걸어서 출퇴근하고, 주변에 좋은 술집이 많다고 농으로 답하지만 정색하고 다시 물으면 답은 보통 세 가지다.

우선 부암동 집이 주위에 자연이 가득했다면 한옥은 집 안에 자연이 가득하다. 집과 집 사이에 틈이 있고, 마당이 하늘로 뻥 뚫려 있으므로 바람과 햇살이 경계 없이 드나든다. 계절을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하루하루 일기를 체감한다. 문제는 바람과 햇살만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냄새도 드나든다. 까막까치와 귀뚜라미는 자연 레퍼토리지만 족히 20m는 떨어진 중국집 환풍구가 고장 난 걸 정확히 알아챌 수 있다. 대각선 방향 프랑스 식당의 향신료 냄새도 바람 방향에 따라 낮은 담을 타넘는다.

옆집들과 무던히도 싸웠다. 동네 공적이던 옆집 냉동팬은 결국 뜯어냈고, 반대편 옆집 담벼락과 빗물받이도 새로 고치도록 했다. 뒷집 공방 에어컨 실외기는 위치를 옮겼고, 집 앞 골목 불법주차도 몰아냈다.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평화를 얻었다. 공정하려고 애썼기에 이웃들과 서로 이해하고, 잘 지내고 또 긴장한다.

외부 자연을 특화하는 수많은 공동주택 브랜드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그 공동주택은 콘크리트 박스 형태다. 환기조차 설비에 의존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자연이 차단되는 동시에 이웃과의 소통도 차단된다. 심지어 소통하려는 노력조차 차단되기 쉽다.

둘째는 마당이다. 혹자는 마당이 그 면적만큼 고층건물을 소유한 것과 같다고 표현하는데, 놀라울 정도로 동감한다. 우리 마당이 12m² 정도이니 그 정도 건물을 소유해 얻는 수익만큼 만족감이 크다. 만족감은 활용도에 달려 있다. 아침저녁으로 마당을 즐기기 위해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려 노력한다. 술과 책과 음악 정도인 취미의 8할은 마당에서 채운다. 특히 봄과 가을 쪽마루에 누워 햇볕을 독점하는 건 하늘이 내린 한옥 거주자의 특권에 속한다.

우리 집은 마당을 거쳐야 집 안에 들어설 수 있기에 마당은 일종의 전이지대다. 이웃은 일단 골목에서 만나지만 친해지면 대문을 넘어온다. 차나 술도 무시로 끼어든다. 밤이 늦더라도 눈치껏 술과 안주를 조달하고, 흔적만 안 남긴다면 집사람도 모른 체한다.

마지막은 이웃이다. 계약부터 공사, 이사 전 과정은 실시간으로 동네에 빠르게 전파된다. 당사자 얼굴만 빼곤 모든 걸 알게 된다. 골목 이웃, 같은 목수에게 집을 지은 동네 분들, 아이 동창생 가족은 물론이고 술집 주인장부터 수도 사장님, 미장 사장님, 철물점, 세탁소, 전파사, 부동산, 커피집 주인장까지 동네 카르텔은 씨줄과 날줄로 단단히 엮여 이젠 신참인 나조차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처지다.

익명성의 도시에서 한옥과 마을은 소도처럼 이질적이다. 관리사무소 같은 대행자가 없는 삶은 대의민주주의와 대별되는 직접민주주의처럼 차별화된다. 한옥에 사는 일은 결국 주변에 나를 내보이는 삶의 방식을 취한다. 한옥에 살고 싶다면 먼저 나를 내보일 수 있는지 답하는 게 우선이다.

온수진 서울시 푸른도시국 주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