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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볼트가 있었다면… 패럴림픽엔 스미스가 있다

입력 | 2016-09-03 03:00:00

[토요판 커버스토리]다시 리우! 이들을 주목하라




우사인 볼트(30·자메이카)는 지난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마노 아 마노(Mano a Mano·‘손에 손 잡고’라는 뜻) 챌린지’를 앞두고 사전 이벤트로 시각장애인 육상 선수의 손을 잡고 50m를 뛰었다. 이 선수는 2012년 런던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여자 육상 100m, 200m T11(완전히 빛을 감지하지 못하는 등급)에서 2관왕을 차지한 테레지냐 길례르미나(38·브라질)였다.

길례르미나는 점점 시력을 잃게 만드는 색소성 망막염을 갖고 태어났다. 가난한 그의 부모는 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길례르미나뿐 아니라 형제자매 12명 중에서 5명도 시각장애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집을 나가 버렸다. 인정 없는 동네 꼬마들이 놀리기 딱 좋은 처지. 친구들이 놀리는 게 싫었던 길례르미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시력이 약해질수록 달리기는 더 빨라졌다. 시력을 완전히 잃은 현재 그는 100m를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12.01초) 뛴 장애인 여자 선수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려두고 있다.

그가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선택한 운동은 육상은 아니라 수영이었다. 길례르미나는 “육상을 하려면 제대로 된 러닝화가 필요했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해 돈이 없었다. 그 대신 수영복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달리고 싶다’는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동생에게 빌린 스니커(평범한 운동화)를 신고 육상대회에 나갔다. 그는 “18km를 1시간 반에 완주하고 나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길례르미나는 2004년 아테네 패럴림픽 때 400m 동메달을 따내면서 국제무대에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8년 베이징 대회 때는 200m에서 금메달, 1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국 런던에서 2관왕을 차지하면서 길례르미나는 ‘장애인 여자 육상의 우사인 볼트’가 됐다.

길례르미나는 “나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많은 사람들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최고가 된다면 내 현실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삶을 다시 살아야 한다면 난 장애까지 모든 걸 똑같이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장애인 선수라고 다른 건 없다”

남자 선수 중에서는 ‘블라인드 러너’ 제이슨 스미스(29·아일랜드)가 ‘패럴림픽의 우사인 볼트’를 꿈꾼다. 스미스는 볼트처럼 2008년 베이징 대회 때부터 이번 리우 대회 때까지 100m, 200m T13(시각장애가 가장 덜한 선수들이 참가)에서 3개 대회 연속 2관왕을 노린다.

스미스는 2014년 커먼웰스게임(영연방 국가들이 모여 치르는 스포츠 대회) 때는 비장애인 선수들과 함께 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당시 스미스는 “볼트와 승부를 겨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설렌다”고 말했지만 볼트가 400m 계주에만 참가해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번 패럴림픽 참가 선수 중에서 스미스만 비장애인 선수들과 겨뤄 본 건 아니다. 탁구 선수 나탈리아 파르티카(27·폴란드)는 2008년 베이징 대회 때부터 올해 리우 대회 때까지 3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다. 패럴림픽 출전은 2000년 시드니 대회 때부터 이번이 다섯 번째다. 아직 올림픽 메달은 없지만 패럴림픽에서는 2004년 아테네 대회 때부터 4년 전 런던 대회 때까지 여자 단식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팔꿈치 아래가 없었던 파르티카는 일곱 살 때 언니를 따라 탁구장에 갔다가 탁구에 빠지게 된다. 그는 처음 탁구 라켓을 잡은 지 4년 만에 시드니 패럴림픽 대표로 뽑히면서 역대 최연소 패럴림픽 출전 기록(11세)도 세웠다.

파르티카는 “장애에 대한 질문을 20년 넘게 들었다. 비장애인 선수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나도 모두 할 수 있다는 대답 말고는 다른 대답을 할 수가 없다”며 “꼭 장애가 없더라도 누구나 선천적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는 부위가 다른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호주 여자 탁구 대표 멀리사 태퍼(26)와 이란 양궁 대표 자흐라 네마티(31)도 리우 올림픽에 이어 리우 패럴림픽에도 참가한다.


○ “장애는 행운이었다”

알렉스 차나르디(50·이탈리아)는 원래 포뮬러원(F1), 인디카 레이스 등에서 활약한 드라이버였다. 하지만 2001년 경기 중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모두 잘라내야 했다. 그렇다고 레이싱 커리어를 끝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차나르디는 사고 4년 뒤 두 손만으로 운전할 수 있도록 개조한 차를 끌고 월드 투어링카 챔피언십(WTCC)에서 우승하며 재기를 알렸다. 장애는 그에게 또 다른 레이싱 무대도 열어줬다. 핸드 사이클이었다. 핸드 사이클은 이름 그대로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손과 팔로 동력을 만들어 타는 자전거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뉴욕마라톤대회 조직위원회는 2007년 차나르디에게 개회 축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차나르디는 “대회 요강을 살펴보니 핸드 사이클 부문도 있더라. 그래서 기왕 가는 거 나도 참가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딱 4주 연습하고 경기에 참가했다. 결과는 4위였다.

그 뒤로 핸드 사이클 선수를 겸업하기 시작한 차나르디는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 핸드 사이클 2관왕을 차지했다. 당시 도로 사이클 경기가 열린 켄트 브랜즈 해치 모터스포츠 서킷은 그가 F1 머신을 몰고 달려본 적이 있는 코스였다. 그는 “자동차 레이스에서는 엔진이 고장 나면 엔지니어에게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핸드 사이클에서는 내가 바로 엔진이다. 정말 행복하다”고 패럴림픽 2관왕이 된 소감을 밝혔다.

리우에서 패럴림픽 2연패를 노리는 차나르디는 그저 장애를 극복한 것만이 아니다. 그는 “장애는 행운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애가 자신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줬다는 뜻이다. 그는 사고 후 자기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학교를 세우는 등 활발한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차나르디는 “우리 몸에는 꼭 필요할 때만 힘을 얻을 수 있는 에너지 탱크가 들어 있다.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그 에너지를 꺼내 도전할 수 있다”며 “장애인 스포츠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가 갖는 진짜 의의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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