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요즘! 어떻게?]10월, 그의 목이 다시 춤춘다

입력 | 2016-08-30 03:00:00

성대 수술 후 부활의 첫 콘서트
소리꾼 장사익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검정로 자택 마당에서 만난 소리꾼 장사익은 다시 살아난 목청부터 뽑았다. 그는 “부모가 돌아가셔도 잘 안 운다는 요즘 세상에도 하찮은 유행가 한 곡이 사람 마음을 울린다”고 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찔레꽃 향기 한 번 맡아본 적 없대도, 아니 찔레꽃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른대도 좋다. 소리꾼 장사익(67)이 부른 ‘찔레꽃’(1995년)을 한 번 듣고 나면 그 별난 꽃 이름 세 음절이 가슴 한편에 앉아 뿌리를 내린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목 놓아 울었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몰라도 그저 슬퍼지는 이유. 그것은 노을 길에 선 허허한 그림자의 토로처럼, 직선같이 긴 포물선으로 떨어지는 유성우처럼 절절하게 쏟아지는 그의 목소리 때문이다.

24일 서울 종로구 세검정로 자택에서 만난 그의 입에서 ‘그 독보적인 목에 칼을 댔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가슴 한편이 마치 ‘찔레꽃’ 가시에 찔린 듯 아프게 내려앉았다.

“한 3∼4년 전부터 무대 위에서 물 마시는 횟수가 크게 늘었어요. 공포였어요. ‘왜 자꾸 목이 마르고 마른기침이 날까.’ 갈수록 위 목, 아래 목이 닫히고 모래알 섞인 듯 서걱거리는 소리까지 나기 시작했어요.”

올 1월 찾은 이비인후과에서 그는 청천벽력을 들었다. 성대에 어른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혹이 발견됐다고 했다. 수술을 하고 당분간 목을 쉬며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당장 올해 잡힌 스케줄부터 취소했어요. 의사의 첫마디에 ‘사형선고’ 받듯 눈앞이 캄캄해졌죠.”

2월 초 수술을 받은 뒤 2주 동안은 말 한마디 못 했다. 말문을 트고 난 뒤에도 5월까지는 매주 병원을 찾아 발성 연습을 하며 성대를 위한 일종의 물리치료를 계속했다. “‘노래를 못 하게 되면 뭘 해야 하나. 자격증이라도 따볼까.’ 경비원이나 택시운전 일을 하자니 안 좋은 허리가 걸렸죠. 노래를 못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단 생각까지 잠깐 들었어요.”

치료에 전력을 다한 끝에 장사익은 마침내 회복했다. 올해 6월 KBS TV ‘가요무대’ 브라질 상파울루 현지 공연 녹화가 오랜만에 소리를 다시 찾은 무대였다.

그는 10월 5∼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2년 만에 콘서트(02-396-0514)를 갖는다. 일종의 부활 공연이다. 애초에 그는 전설의 늦깎이다. 무역회사, 전자회사, 가구점, 카센터 등 10개가 넘는 직장과 직업을 오가다 46세가 돼서야 데뷔 앨범 ‘하늘 가는 길’(1995년)을 냈다.

그의 목이 다시 춤을 춘다. “‘꽃인 듯 눈물인 듯’이란 가사가 담긴 노래 ‘서풍부(西風賦)’는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가 될 겁니다. 돌아보니 제 노래 인생이 바로 ‘꽃인 듯 눈물인 듯’, 바로 그거더라고요. 꽃이 피던 시절이 있었다면 올해 저는 눈물의 시절도 보냈어요. 넘어진 마라토너가 뛰어온 길을 돌아보듯 제겐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서풍부’에선 녹음 때 그랬듯 즉흥적으로 막 소리를 풀어내 볼 거예요.”

1부의 첫 두 곡은 각각 허영자 마종기의 시에 노래를 붙인 ‘감’과 ‘상처’다. “가을이 되면 과일이 익듯 우리 인생도 점잖게 익어야 하지 않겠나, 해서 두 곡을 서곡으로 삼았습니다.”

누구에게보다 지독한 무더위가 지나간 지금, 장사익의 계절은 지금 가을쯤 왔을까.

“아뇨. 여름이죠. 1년 해봐야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봄과 가을은 사실 며칠 안 되잖아요. 좋다고 봄, 가을만 있다 쳐봐요. 열매 숙성은 언제 한답니까. 태풍도, 가뭄도, 큰비도 견디면서 뿌리째 뽑히지 않고 버텨야 비로소 가을의 단맛을 볼 수 있죠. 제겐 좋은 노래, 좋은 공연 해낼 때에야 잠깐씩 가을이 온다고 생각해요. 그거 하날 위해 사는 건데….”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