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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기자의 ‘도시의 異人 열전’] 한자를 알면 우리 역사가 보인다

입력 | 2016-08-26 10:48:00

⑤ 한자 박사 최상용




‘공부가 되는 초중등 교과서 한자어’ 시리즈를 완간한 최상용 박사. 사진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두고 걸핏하면 트집을 잡는 외국인들이 있어요. 미개한 나라라고 하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요. 이에 대해 우리의 고유 식문화라고 막연하게 대응하는 것보다는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이해시켜주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최근 화제가 된 양궁선수 기보배 아버지와 모델 최여진 어머니의 보신탕 논란을 지켜본 그는 인터뷰 서두에서 개(犬) 이야기를 먼저 끄집어냈다. 인터뷰에 응한 최상용 박사(56·인문기학연구소장)는 한자의 원형 글자인 갑골문과 금문, 그리고 지금의 해서에 이르기까지 한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한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왜 보신탕 문화를 먼저 언급했는지는 인터뷰 말미에서 밝혀진다. 우선 그의 말을 옮겨본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다양한 민족이 개를 식용으로 사용하였지만 현재까지도 그러한 문화를 유지해오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그중에서도 한민족으로 대표되는 한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의 동북 3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만이 개고기를 전문적인 식단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 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개고기 풍속이 곧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단서가 된다는 거예요.

농경민족이었던 중국 한족(漢族)과 달리 수렵민족이었던 우리 동이족(東夷族)에게 개는 사냥용 및 호신용, 때로는 식량용, 또 때로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물용으로서 매우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특히 고대인들의 여러 문화 양식 중 제사 문화는 그 생명력이 매우 길어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데, 우리 민족은 가장 소중한 개를 제단에 바쳤습니다. 옛 고조선의 영토였던 만주 지역에서 발굴한 청동기 시기의 무덤들 속에서 순장된 개 뼈가 발견되는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이런 게 한자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요.”


동이족은 제사상에 개고기를 올렸다

한자 ‘그러할 연(然)’을 보자. 이 글자는 개고기 연(¤)과 불 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은 동물의 살코기를 상형한 육(肉)의 변형인 육(月)과 개 견(犬)으로 구성된 것으로 개의 살코기를 표현한 것이다. ‘¤’는 불꽃을 뜻하는 火(화)의 변형이다. 합해서 보면 개(犬)를 통째로 불(¤)에 그슬려 그 고깃덩이(月=肉)를 제사상에 올린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개를 제사용으로 바칠 때는 불에 그슬려 제단에 올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러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요즘도 개를 식용으로 할 때는 유독 불에 그슬려서 하는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따라서 然에는 개고기를 식용으로 하는 동이족만의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최 박사는 개와 함께 호랑이 역시 한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문화적 연관을 맺어 왔다고 말한다. 동북아 최고의 지리서인 ‘산해경·해외동경’에 “군자의 나라가 북쪽에 있는데, 의복을 갖추고 관을 썼으며 칼을 차고 다닌다. 육식을 하며 큰 호랑이 두 마리를 곁에서 호위케 하였다(君子國在其北 衣冠帶劍 食獸 使二大虎在旁)”라고 쓰여 있다. 호랑이가 군자의 나라인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는 거다. 그리고 이런 문화가 ‘바칠 헌(獻)’ 자에서 나타난다는 것.

“獻 자는 솥 권(¤)과 개 견(犬)으로 이루어졌어요. 또 ¤은 호피 무늬 호(¤)와 세 발 달린 솥을 상형한 솥 력(¤)으로 구성돼 있지요. 즉 권 자는 한민족이 친근한 영물로 여겼던 호랑이 무늬(¤)를 새겨 넣은 세 발 달린 솥(¤)을 그려낸 것이에요. 따라서 권과 견의 합성 글자인 헌은 호랑이 무늬(¤)가 새겨진 세 발 달린 솥(¤)에 개(犬)를 삶아서 천제 혹은 종묘에 바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바칠 헌, 올릴 헌으로 불립니다. 이런 것은 중국 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입니다.”

최 박사는 고대인들은 여러 동물을 제단에 바쳤는데 주로 소, 양, 개 등을 제물로 이용했다고 말한다. ‘희생할 희(犧)’ 자를 분석해볼 때 농경민은 소(牛)를, 유목민은 양(羊)을, 그리고 동북아의 수렵민족은 주로 개(犬)를 제단에 바친 것으로 보인다는 것. 따라서 개 견 자가 들어간 한자는 중국 문자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게 그의 추론이기도 하다.

“본디 사물의 형상이나 의미를 그림으로 그려낸 한자는 역사나 문화가 바뀌어도 본뜻을 그대로 함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제가 한자에 천착했던 것도 사실은 우리 역사와 문화의 근원을 탐구하는 차원이었습니다. 승자의 논리로 기록된 역사는 때로는 의도적 왜곡이나 모호한 점이 많지만, 글자 제작 당시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담고 있는 뜻글자인 한자는 어느 면에서 보면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풀어낼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동북방에 거주한 고대인들의 공용어였던 한자(漢字)를 통해 한민족의 정체성은 물론 그림글자인 한자가 중국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점을 자원의 해석을 통해 밝혀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 만행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러면서 최 박사는 최근 한국과 중국 간 논란이 되고 있는 동북공정은 비단 오늘날에만 자행되고 있는 역사 왜곡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한때 대륙의 많은 영토를 차지했던 동이족의 일원이었던 한민족은 고조선이 멸망한 후 변방으로 내몰렸다. 이와 함께 동이족의 문화는 중원에서도 밀려났다. 동이족과는 그 시원이 다른 지나족인 한족(漢族)이 대륙을 제패하면서 들어선 한(漢)나라에서는 유교(儒敎)가 정치사회의 강령이 됐다. 제사 문화 역시 이를 따랐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중원은 물론 유교가 유입된 한반도에서도 개고기는 제사상에 오를 수 없는 금기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내용은 한자 ‘범(範)’ 자를 풀어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법을 뜻하는 範 자는 대 죽(竹)과 수레 차(車), 병부 절(¤)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글자에는 고대 중원 사람들이 액땜을 하는 생활양식이 담겨 있어요. 즉 수레(車)를 끌고 집을 나서기에 앞서 사고 없이 귀환(無事歸還)을 바란다는 의식 행위가 숨어 있습니다. 먼저 대나무(竹)를 잘 엮어서 바구니를 만든 다음 그 속에 살아 있는 개(¤=犬)를 넣고서 수레(車)를 몰아 바퀴로 깔아뭉개버리는 거예요. 이때 개의 피가 바퀴에 묻으면 액(厄)막이를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거지요. 그러한 유풍이 살생을 금하는 종교적 생명존중사상의 유입 등으로 정월대보름이나 굿을 하고 나서 바가지를 밟아 깨뜨려 액땜을 하는 풍속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액막이 풍속이 규칙이나 본보기를 의미하는 뜻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이외에도 고대 중원인들은 살아있는 개를 죽인 후 큰 도성의 4대문에 내걸어 악기(惡氣)나 고(蠱·독)를 물리치는 액막이로 사용하거나, 건축물을 지을 때 개를 희생의 제물로 삼아 저주를 막기도 했다고 한다.

“정복한 민족에 대한 문화적 억압과 정신적 복속을 위해 흔히 악용되는 수단이 종교 혹은 그 민족의 전통을 짓밟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땅의 신과 조상을 위한 신성한 제사에 바쳐지는 제물을 천시하거나 멸시하는 것은 그 민족의 문화를 억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이지요. 개를 제물로 바치는 동이족의 문화는 오랑캐의 저급한 문화라고 격하한 것이지요. 마치 일제가 우리 민족의 꽃인 무궁화를 말살한 정책과도 비슷해요. 일제는 ‘무궁화를 보면 눈병이 난다’, ‘무궁화의 꽃가루는 부스럼을 나게 한다’, ‘벌레가 많이 낀다’는 등의 말들을 유포해 국화(國花)나 다름없는 무궁화를 저급한 꽃으로 비하하여 민족의 자긍심을 깎아내렸지요.”


한자를 배워야 하는 이유

최상용 박사가 펴낸 저작물. 사진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최 박사는 이외에도 수많은 한자들을 예로 들며, 그 속에 담겨 있는 역사적, 문화적 함의를 설명했다. 결론은 한자를 알아야 우리 민족의 숨겨진 역사를 온전히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는 한편으로 한자의 유용성에 대해서도 힘주어 강조했다.

“뇌과학 연구자들에 의하면 한자와 한글을 동시에 활용하는 사람은 뇌력을 발달시키는 데 상당히 유리하다고 합니다. 한글과 같은 소리글자(表音文字)는 언어와 관련이 깊은 좌뇌가 주로 활용되는 반면에 한자와 같은 뜻글자(表意文字)는 어떤 형상이나 이미지를 주로 관장하는 우뇌가 활용되지요. 또한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활용하면 뇌력이 증진될 뿐만 아니라 좌뇌와 우뇌의 균형을 통해 창의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인의 두뇌가 뛰어난 이유가 바로 한글과 한자를 동시에 활용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어린 학생들의 한자 실력 키우기에 많은 애정을 쏟고 있다고 한다. 최근 ‘한자 실력이 과학 실력이다’라는 네 번째 책을 펴냄으로써 ‘공부가 되는 초중등 교과서 한자어’ 시리즈를 완간하기도 했다. 이 시리즈는 한자어로 된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학습용어를 뜻풀이해 학부모들 사이에 호응을 얻고 있다.

“공부를 잘하려면 어려서부터 학습용어의 어원을 알아보는 습관을 기르는 게 중요합니다.

이 시리즈물은 초중등 교과서 학습용어의 어원부터 익히고 그와 관련된 교과 상식을 공부하도록 했습니다. 재미있는 만화와 교과서 속 학습 콘텐츠 등이 수록되었기 때문에 교과서의 핵심 개념을 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거예요.”

그의 말대로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교과서의 학습용어를 정확히 익히려면 한자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말의 70%는 한자로 되어 있고, 교과서 속 학습용어의 대부분은 한자로 돼 있기 때문이다. 한자를 아는 학생은 학습용어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학생은 무조건 달달 외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과학 교과서에서 ‘조류’라는 한글 단어를 접한다면 그 뜻이 불분명하게 다가올 수 있다. 과학 교과서에서 ‘조류’는 ‘하늘을 나는 새(鳥類)’, ‘물속에 사는 식물(藻類)’, ‘바닷물의 흐름(潮流)’ 등을 뜻하는 학습용어다. 한글로는 똑같은 단어이자만 한자로는 그 뜻이 각각 다르다. 이처럼 한글로만 표기했을 때는 그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뜻 다가오지 않지만 그 용어의 한자를 알고 나면 쉽고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박사는 한자는 결코 중국인들만의 글자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고대 동아시아 사람들의 공용 문자이고 우리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문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속적으로 한자 문화 보급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한자의 강점인 회화적인 특징을 되살리고 글자에 담긴 역사적인 배경을 소개한 ‘브레인 한자’, ‘브레인 급수한자(앱용)’, ‘인문고사성어집1, 2(앱용)’ 등이 있다. 원광대학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인문기학연구소 소장과 동양문화아카데미 교수로 활동하면서 기업, 단체, 대학원 등에서 한자와 동양 사상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