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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홍수용]“새누리당 3분의 1은 포퓰리즘을 정의로 포장하는 좌경화 세력”

입력 | 2016-08-22 03:00:00

前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 오정근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지낸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현 경제팀이 아베노믹스의 일부 제도를 피상적으로 도입해 정책 실패를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기업소득 환류세제의 경우 기업이 임금보다는 투자를 늘리는 쪽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홍수용 논설위원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김희옥 전 위원장은 9일 새 지도부에 바통을 넘기면서 “‘진화하는 보수의 새 역사’를 써나가자”고 했지만 보수 여당의 진화를 믿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6월 2일 비대위 출범 이후 혁신은커녕 곪은 상처를 방치한 맹탕 위원회였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오정근 전 비대위원(건국대 특임교수)은 비대위 활동 종료 직후 “여당에 문제의식이 약하고 의원들이 공부도 별로 안 한다”고 했다. 새누리당이 현실을 비상하게 보지 못했다는 것으로 비대위가 맹탕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여당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보수적 성향의 경제학자로 꼽히는 오 교수에게서 새누리당의 민낯과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들어봤다.

배신감이 초래한 ‘당무 거부 사태’

―스스로 성향이 보수, 중도보수, 진보 중 어디에 속한다고 보나.


“분명한 보수우파다. 젊을 때는 좌파 이론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다 영국 맨체스터대로 유학 가면서 카를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했다. 못 먹고 못살던 그 시절, 좌파 이론에 관심이 많았다. 박사 때 생각이 바뀌어서 정통 거시경제를 전공했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성장과 추락의 기로에 있다. 비전이 뚜렷한 보수우파가 집권해야 안정된 선진국이 된다고 믿는다.”

―새누리당 비대위원 제안을 누구에게서 언제 받았나.

“당시 김 위원장이 직접 전화했다. 경제 문제를 몰라 여러 사람에게 자문했더니 보수우파로서 경제를 아는 사람이라면서 추천하더라고 했다. 김 위원장과 이전에는 일면식도 없었다.”

―김 위원장이 유승민 의원 등의 일괄 복당을 의결한 뒤 당무를 거부해 논란이 일었다. 권성동 당시 사무총장을 경질까지 한 것은 무리수라는 말도 나왔는데….

“당시 위원장은 유 의원 복당 문제에 대해 숙려 기간을 갖자고 했는데 일부 강성 의원이 오늘 당장 결정하지 않으면 범법행위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임명한 권 사무총장이 중립자적 역할을 하지 않고 강성 의원들 편을 들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권 사무총장에 대한 배신감이 컸을 것이다. 사람들은 사무총장을 왜 경질했는지 이해를 못했겠지만 이 배신감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새누리당의 민낯은….


“의원과 당직자 가운데 최소 3분의 1은 좌경화해 있는 것 같다. 지역구에서 당선되려면 여당도 야당과 비슷한 인기 위주 좌파정책을 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포퓰리즘을 ‘정의’라고 포장하며 혼동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경제법에 따라 설렁탕 가게에 임금을 지원하면 경쟁력 있는 옆 가게가 피해를 본다. 정부에 의존하는 기업이 살고 경쟁력 있는 기업이 망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좌경화하면 미래가 없다.”

오 교수는 새누리당 총선 참패의 원인을 담은 ‘국민백서’ 발간 당시 여당이 인터뷰한 대상자가 좌파 인사 일색이었던 점에 불만을 표시했다. 소설가 복거일 씨 같은 우파 인사를 토론회에 부르려 하자 당 일각에서는 “너무 보수에 치우친 인물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이런 점이 보수의 정통성이 훼손된 증거라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인적 역량을 평가한다면….


“역량 있는 정치인을 발굴하는 하부구조가 취약하다. 여러 지역구 당협위원회를 가봤다. 현역 의원이 아니지만 다음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는 당협위원장들을 보면 ‘저런 사람들에게 국정을 맡겨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책적 역량이 부족하다. 당의 정책을 뒷받침하려고 정부에서 파견된 수석전문위원들도 전문성이 부족해서 사안별로 대응하기 어렵다. 현역 의원들은 일단 의원이 되면 더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다.”

의원들, 공부 안 하고 ‘웰빙’에 만족


―왜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보나.


“당선되고 나면 너도나도 ‘웰빙족’이 된다. 국정의 비전과 철학을 가다듬고 국민에게 제시하기보다는 국회의원이 됐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고 안주한다. 각종 회의도 너무 많다. 시간도 없고 철학도 없으니 지역구에 인사만 다닐 뿐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민생은 야당처럼 하겠다’고 했는데….

“포퓰리즘 성격의 정책을 하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민생정책에는 복지를 많이 해주는 방법이 있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길이 있다. 이 대표의 민생은 후자의 길을 걷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대표 스스로 가난 극복의 길이 좌파식 포퓰리즘이 아닌 시장경제라고 믿었으니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 아니겠나.”

최근 새누리당이 제시한 포용적 시장경제라는 모델은 더불어민주당의 포용적 성장과 닮은꼴이다. 이에 대해서도 오 교수는 오해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포용적 시장경제는 누구든 일하고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어서 법인세를 더 징수해 나눠주자는 야당의 포용과는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가 1년에도 수차례 부양정책을 쏟아내지만 경제는 제자리걸음이다.

“첫 단추인 환율정책에서 실기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데 원화가 엔화에 비해 고평가되면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 게 근본 문제다. 특히 금융위기 직후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던 2011년에 기업들은 투자를 재개했는데 원화 강세 흐름이 이어지다 보니 한국 기업이 초토화했다. 그런데도 최근 한은은 금리를 동결했다.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최근 우리나라 금리가 기축통화국 금리보다 높아야 한다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에 대해 오 교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미국이 금리 인상 시기를 미룬 것은 우리 입장에서 금리를 내릴 몇 개월의 골든타임을 얻은 셈인데 실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 불황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지금 한국 경제 상황은 일본의 장기불황이 시작된 1992년과 유사한 모습이다. 성장률이 2%대에서 1%대로 떨어질 위험이 커지고,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일자리가 없다. 우리의 지금 상황은 일본의 장기불황 초입보다 더 불리하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진입했다. 우리는 국민소득이 여전히 2만 달러대로 적고, 원천기술이 없고, 세계는 보호무역주의로 가고 있다. 이번에 추락하면 회생의 가능성이 더 낮다.”

―가계소비와 기업투자가 모두 부진하다. 정부 재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공공 일자리에 재정을 쓰면 그 효과가 당해연도에 그치고 다음 해 다시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식상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규제개혁으로 기업이 투자를 하도록 하는 게 답이다.”

―규제개혁 회의를 그렇게 많이 했지만 효과는 없다.


“개혁이 구두선에 그치고 있어서다. 규제당국이 규제를 틀어쥐는 이유는 공무원이 재직 당시에는 향응을 받고, 퇴직 후에는 낙하산으로 내려가는 구조 때문이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끝장토론을 아무리 해 본들 대통령을 속이는 것밖에 안 된다.”

―우리 정부가 벤치마킹했던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평가한다면….


“아베노믹스는 ‘금리 인하, 양적 완화→엔화 약세 유도→기업수익 개선→임금 인상→소비 확대→세수 확대→국가부채 감축’으로 이어지는 정밀한 중장기 설계도다. 10년 뒤의 모습을 지금 예단하면 안 된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당시 정부가 환율-임금-조세정책이 한 세트로 있는 아베노믹스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소득주도 성장처럼 인기를 끌 것 같은 정책만 피상적으로 가져다 쓰는 바람에 정책 실패를 자초했다.”

법 핑계 그만 대고 관료 휘어잡아야

―밖에서 보면 경제 관련 당정협의가 형식적으로 보인다.


“아니다. 비공개 회의 때 당정이 터놓고 얘기한다. 최근 정부가 세법 개정안과 관련해 2000만 원 이하 임대소득자에게 과세하는 문제를 들고 와서 연기 여부를 논의했다. 2000만 원 이하 임대소득자 중에는 퇴직 후 국민연금으로는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기존에 살던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한 뒤 남는 돈으로 오피스텔이나 소형 아파트를 사서 세를 놓으며 생활비를 충당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세금을 매기면 내년 대선에서 질 것이라고 얘기해줬다. 결국 연기하는 걸로 됐다.”

이런 결정은 비과세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원칙에 어긋난다. 오 교수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을 매기는 원칙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어떤 부분은 적용하고 어떤 부분은 예외로 하는 식은 안 되고 한꺼번에 과세해야 조세의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경제는 보수가 잘한다’는 통설이 유효하다고 보나.

“통설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정책 추진의 전문역량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공무원사회가 다음 정권을 누가 잡을지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다. 복지부동이 시작됐다. 법이 통과 안 돼서 일을 못한다고 하는데 시행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이런 일 하라고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까지 행사하지 않았나. 공무원 사회를 휘어잡는 당의 의지 문제다. 경제회복 1개년 특별계획이라도 만들어 뛰어야 한다.”

그는 요즘 더민주당의 정책 가운데 수용할 만한 것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가장 불편하다. 국민연금 기금을 임대주택 건설사업에 투자하는 야당 정책안의 경우 그럴듯하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기금 고갈 시기가 앞당겨지고 미래 세대는 복지재정 충당을 위해 월급의 70%를 세금으로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정치가 나와는 잘 안 맞더라. 학자로서 현실 정치의 정책 문제점을 비판하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