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응원문화 톡톡]태극 전사들의 선전, 열대야를 견뎌내는 힘이다

입력 | 2016-08-12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폭염과 열대야에도 응원에 나서는 시민이 늘고 있습니다. 밤잠을 쫓으며 태극 전사를 응원하거나 누군가를 응원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

 
12시간 시차도 문제없어


“새벽 기도 가려고 일찍 일어났는데 남편이 오전 4시에 일어나 있더라고요. 올림픽에서 한국과 독일의 축구 경기가 있었대요. 제가 새벽 기도 가자고 하면 만날 피곤하다며 안 일어나더니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 경기 때엔 후다닥 일어나는 게 참 신기해요.” 유애순 씨(57·공무원)

“올림픽 시즌이 되면 한밤중에 맥주를 사러 오는 분이 많아져요. 이 편의점은 대부분이 단골들이라 무엇을 왜 사 가는지 눈치 챌 수 있거든요. 주로 40, 50대 남성분이죠. 이번 올림픽은 시차가 커서 새벽에 열리는 경기가 많다 보니 자정을 넘겨 오는 분이 좀 더 많은 것 같아요.” 김주환 씨(62·편의점 직원)

“이번 올림픽에는 아직 손님들이 와서 응원하면서 경기 보시고 그런 일이 없어요. 이번에는 시간대가 좀 그래서 아마 다들 그럴 거예요. 그렇게 열광적인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올림픽이 시작하던 날에야 올림픽을 한다는 걸 알았거든요.” 김모 씨(42·치킨집 사장)

“응원은 단체로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너무 늦은 시간에 하니까 다들 집에서 본인들 편한 시간에 보거나 인터넷에서 자기들 관심 있는 종목만 찾아보더라고요. 이번에는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관심이 더 낮아진 것 같아요.” 최영락 씨(50·회사원)

“응원가 아이디어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많이 듣고 생각도 많이 하죠. 사람들이 한 번쯤 들어 보셨을 만한 대표 응원가 중에는 제가 만든 게 많아요. 이게 제가 응원하는 방식입니다.” 조지훈 씨(38·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장)


응원으로 하나 됐던 기억


“2004년에 태어났지만 ‘대∼한민국’ 응원과 ‘오 필승 코리아’는 알고 있어요.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저도 몰라요. 그래서 올림픽 볼 때마다 집에서 TV 틀어놓고 엄마 아빠랑 ‘대∼한민국’ 하고 외칠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 권해원 군(12·초등학생)

“아이돌 공연에 저희처럼 엄마와 딸이 같이 오는 경우도 꽤 많아요. 주부들이 스트레스 풀 탈출구가 없잖아요. 이런 공연에 와서 같이 응원하며 소리 지르고 노래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돼요.” 강춘희 씨(50·식품서비스업체 직원)
 
“‘기수단’은 응원 중 멋진 퍼포먼스로 학교의 위상을 드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퍼포먼스 중간에 폭죽이 터졌던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순간 귀가 멍해지면서 소리가 잘 안 들렸는데 모든 게 사라지고 우리만 세상에 남은 느낌이 들었죠. 괜히 감동받아 눈물이 나더라고요.” 김현철 씨(21·대학생·연세대 기수단)


이렇게 변했어요

“2002년 월드컵 이후로 대규모 응원이 사라진 건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이슈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2002년만큼 성적이 나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다시 시청 앞에 모일 겁니다. 응원은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고 박수 치고 뛸 기회를 주거든요.” 정문현 씨(47·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

“옛날 야구 문화는 지금보다 퇴폐적이었어요. 어릴 때 해태 팬이 난입해서 1루수를 때리려고 하는 걸 본 기억도 나요. 요즘은 스마트폰이 보급돼 있으니까 그런 일이 생기면 영상이 금방 퍼질까 봐 못 하겠죠.” 이동수 씨(32·지게차 운전사)

“이번 리우 올림픽 캠페인 주제가 ‘흰수염고래’는 ‘오 필승 코리아’처럼 신나는 곡은 아닙니다. 위로하는 노래죠. 이 곡이 응원가로 선정됐다는 건 힘들고 지쳐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는 응원 문화가 새로이 생겨났다는 뜻이죠.” 윤도현 씨(44·가수)


이런 문화 아쉬워요

“프로축구를 보러 가면 응원 수건, 넥타이, 반지 같은 응원 상품을 팔아요. 그런데 반지와 유니폼만 해도 각각 12만 원이나 하더라고요. 상품을 많이 만드는 건 좋지만 저 같은 학생에겐 비싸다는 생각도 들어요.” 오경은 씨(22·대학생)

“처음 학교 응원가를 배울 때는 3일 내내 몇 시간씩 똑같은 걸 배웠어요.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는지 SNS에 길게 글도 썼죠. 모든 사람이 같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게, 그걸 몇 시간 동안이나 하는 게 사람에 따라 충격적일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죠.” 엄지이 씨(22·대학생)

“축구 경기장에 사람이 없을 때도 있어요. 그때는 학생들에게 봉사활동 시간을 보장해 주는 대신 관중석을 채우고 응원하게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가게처럼 경기장 내에 설치된 먹거리 부스에서 맥주를 잘 팔지 않아요. 어차피 학생들은 맥주 안 사니까요.” 이정림 씨(40·대성건어물 직원)


우리도 응원해 주세요

“비인기 종목 같은 경우는 응원은 고사하고 관중조차 별로 없더라고요. 배구 응원을 가 봤는데 사람 자체가 많지 않았어요. K리그도 인기 구단이 아니면 사정은 마찬가지예요. 저는 FC서울의 팬인데 서울로 방문 경기를 온 전남팀 서포터스가 두세 명밖에 안된 적이 있었어요. 응원이 너무 일방적이라 조금 민망하기도 했어요.” 문정윤 씨(20·대학생)

“‘골볼’은 상대방 팀의 골에 공을 넣어야 하는 시각장애인 종목입니다. 공에서 나는 방울 소리를 듣고 공을 막기 때문에 경기 중에는 조용히 해야 해요. 선수가 소리를 내면 페널티를 받죠. 공이 들어간 찰나의 순간에 환호와 박수가 터지는데 그 순간이 가장 짜릿해요. 선수들은 응원을 소리로밖에 느낄 수 없으니까요.” 김미정 씨(39·대한장애인골볼협회 사무국장)

“2014년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주요 프로 스포츠의 총관중이 1059만9803명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 4종목 외의 종목은 관중 데이터조차 존재하지 않죠. 프로 스포츠 외에는 대부분 엘리트 스포츠에 치중해 클럽, 관중에 대한 관리가 미비했기 때문이죠.” 김미숙 씨(43·한국스포츠개발원 정책개발실 선임연구원)

“장애인 체육에는 ‘응원 문화’라는 말이 어색해요. 가족과 지인을 빼면 보러 오는 사람이 사실 없으니까요. 그 대신 협회에서 온라인으로 응원 캠페인을 많이 진행하려 하는 편이에요. 게시물에 응원 덧글이 달리면 선수들은 힘을 얻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해외처럼 패럴림픽 관중석이 꽉 차는 날이 오길 바라요.” 오주영 씨(40·대한장애인체육협회 직원)
 
오피니언팀 종합·조혜리 인턴기자 성균관대 의상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