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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아우성 외면하다 임시방편만… 근본적 개선책 내놔야”

입력 | 2016-08-12 03:00:00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 한시적 완화]정부 대책에도 여론은 냉랭




문열고 ‘헉헉’… 문열고 ‘펑펑’… 누진제가 만든 두 모습 11일 서울 용산구의 한 복도식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전기요금 누진제를 걱정해 에어컨도 켜지 못한 채 현관문을 열어놓고 집 밖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맨위쪽 사진). 서울 중구에서는 문을 활짝 연 채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놓고 영업하는 가게들을 중구청과 한국에너지공단 직원들이 온도계를 들고 단속하고 있다(맨아래쪽 사진).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사진공동취재단

전례 없던 폭염이 이어지자 전기요금 누진제의 직격탄을 맞는 일반 가정에서는 “여름마다 에어컨을 틀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전기요금을 감내해 왔지만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임산부나 신생아가 있어 냉방이 꼭 필요한 가정과 노약자 등 취약 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새누리당과 정부가 11일 한시적인 전기요금 인하 대책을 내놨지만 여론은 냉랭하기만 하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가 땀띠로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에어컨을 끌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직장인 김모 씨(38)는 더위를 많이 타는 아들(3) 때문에 밤마다 에어컨을 틀다가 결국 이번 달에 120만 원짜리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 김 씨는 “나 같은 사람이 많으니 한국전력공사가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펑펑 주고 해외연수까지 보내는 것 아니겠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11일 서울 성동구의 한 소아과에 세 살 난 아들을 데려온 최모 씨(32·여)는 전기요금을 아끼겠다며 에어컨을 껐다 켜기를 반복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잦은 온도 변화로 감기에 걸린 아들을 바라보며 최 씨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 전력소비량을 무시하고라도 일정하게 냉방을 해야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신생아를 키우는 가정은 고충이 더 심하다. 돌보는 데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영화관 등 공공장소로 ‘피서’를 가기도 상대적으로 힘들다. 정부에서 다자녀 가정에 전기요금 혜택을 주고는 있지만 월 한도가 1만2000원에 불과하다. 생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김모 씨(32·여)는 누진제를 걱정하면서도 하루 20시간 이상 에어컨을 사용하고 있다. 김 씨는 “집집마다 사정이 있는데 하루 4시간 운운하는 정부를 보면 국가의 출산 장려 정책마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에어컨을 갖추지도 못한 취약 계층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서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나고 있는 신모 씨(59)는 “집 안에 있으면 죽는다. 집 밖으로 열이 빠져나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노인의집에 사는 박모 씨(82·여)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과 기초노령연금으로 매달 40만 원을 받는데 병원비, 교통비, 식비에 공과금까지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켜기도 무섭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지는 국민의 불만에 당정이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7∼9월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서민들의 아우성을 들은 척도 하지 않다가 고작 내놓은 것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냉소적인 반응만 나오고 있다. 7월분 요금에도 소급 적용할 것이란 소식에 직장인 이모 씨(25)는 “전기요금 폭탄이 무서워서 에어컨도 제대로 켜지 못하고 힘겹게 열대야를 견뎌 온 나 같은 사람들만 바보로 만드는 셈”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변모 씨(52)는 “분명 산업통상자원부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진제를 완화하기는 힘들다’고 했는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갑자기 요금 체계를 바꾸는 것을 보니 황당하기만 하다. 도대체 그들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정수 hong@donga.com·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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