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내력벽 철거 허용 보류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리모델링 조합이 사업 추진 상황을 알리기 위해 최근 내걸었던 현수막.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 내력벽 철거 허용 없던 일로…3년 뒤 다시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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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간 내력벽의 일부 철거는 주택 수를 늘려 분담금을 줄일 수 있는 수직증축과 함께 아파트 리모델링의 사업성을 좌우하는 핵심 사안으로 꼽힌다. 내력벽을 없애면 다양한 평면으로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베이(거실과 안방을 전면에 배치)로 지어진 낡은 소형 아파트를 채광과 환기에 유리한 3베이(거실과 방 두 칸을 전면 배치) 구조의 중형 아파트로 증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리모델링 조합들은 그동안 내력벽 철거 및 보강 등 전면적 구조변경을 통한 리모델링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해 안전등급(B등급 이상)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주택 간 내력벽 철거를 허용하기로 하고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해 왔다.
○ 정부, 안전 부담에 급선회…‘갈지자’ 행보 비판도
당초 내력벽 철거를 허용하겠다던 정부가 1년도 안 돼 전면 재검토로 입장을 선회하자 정부 정책이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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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4개월 만에 전면 재검토로 방향을 뒤집으면서 국토부가 성급하게 발표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연구용역 중간발표 때는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우세했다. 국토부는 이를 바탕으로 내력벽 철거 허용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최종 결과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파트의 경우 땅속에 있는 ‘말뚝기초’에 하중에 실리는데 실제로 땅을 파지 않고 설계도만으로 안전 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보강공사를 통해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견과, 건물 하부구조에 대한 실제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시간을 갖고 정밀검증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기관 연구원은 “1기 신도시 건설 당시 중국에서 질 낮은 시멘트가 대거 들어왔고, 골재가 모자라 염분이 함유된 바다모래를 대량 사용하는 등 부실 시공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며 “이 때문에 실제 도면대로 시공이 됐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 분당·일산 등 리모델링 추진단지 ‘패닉’
이날 국토부 발표로 서울 강남구 대치2단지(1753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느티마을3·4단지(1776채) 등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아파트 단지들은 충격에 빠졌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당분간 리모델링 사업이 얼어붙고, 해당 단지들의 집값도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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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 “정부에 뒤통수 맞아… 매몰비용 청구할 것” ▼
부동산114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수도권에서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곳은 총 47개 단지, 2만9947채에 이른다. 1990년대 초·중반 준공된 분당·일산·평촌 등 1기 신도시를 비롯해 지은 지 15년이 지나 리모델링이 가능한 아파트는 수도권에서만 235만7000채에 이르며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오후 분당구 정자동 느티마을 3·4단지 안 공인중개소에는 리모델링 사업 전망을 묻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조합원 이모 씨(58·여)는 “먼 곳으로 이사하지 않고도 쾌적한 구조를 갖춘 새 아파트에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리모델링에 동의한 주민들이 많았다”며 “이번 정부 결정은 주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명수 느티마을 3단지 리모델링주택조합장도 “내력벽 철거가 안 되면 인테리어 공사 수준에 그친다”며 “그동안 내력벽 철거를 허용해 준다며 정부가 조합을 상대로 ‘희망고문’을 해 왔는데, 이제 조합별로 20억 원 가까운 손해를 떠안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한국리모델링협회도 11일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정부 발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김재영 redfoot@donga.com·구가인 / 분당=천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