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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설치고 나오니 찜통 출근… “독한 날씨에 나도 모르게 버럭”

입력 | 2016-08-05 03:00:00

[덥다 더워, 전국이 가마솥]




“열 식혀라” 물 뿌리고 낮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치솟은 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폭염으로 달궈진 바닥을 식히기 위해 서울시 관계자가 물을 뿌리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열대야 불면증으로 신경질이 늘었어요.”

“만사가 귀찮고 일도 잘 안 돼요.”

4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령되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취약계층 관리에 나섰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날씨 스트레스와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산업 현장에선 ‘폭염과의 전쟁’이 벌어졌다.

○ 극한 폭염에 열섬 현상까지

농가도 비상 전국적으로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린 4일 전남 나주시의 한 오리 농가에서는 가축 폐사를 막기 위해 선풍기와 분무 시설을 모두 가동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열섬 현상이 겹친 도심은 상황이 심각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날 서울 주요 지역에서 측정한 온도는 차량 배기가스, 복사열 등이 겹치며 40도를 훌쩍 넘겼다. 광화문광장은 40.1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일대는 41.4도(오후 1∼2시 기준)에 이르렀다. 여의도 증권가는 41.7도나 됐다. 거리의 시민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서울 중구에서 만난 환경미화원 공모 씨(47)는 “폭염에도 치워야 할 쓰레기가 거리에 계속 쏟아진다. 하루 8시간 동안 더위를 견디며 일한다”면서 이마의 땀을 연신 닦아냈다.

자동차업계와 조선업계 등 제조업체들은 이번 주 생산직 근로자들이 단체 휴가에 들어가면서 공장 가동을 멈췄다. 하지만 제철소 등 업종 특성상 가동을 멈출 수 없는 곳은 더위와 사투를 벌였다.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 관계자는 “용광로는 한번 가동을 멈추면 쇳물 온도를 다시 1500도로 끌어올리는 데에 5개월이 넘게 걸린다”며 “얼음과 빙과류를 먹어가며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남에서는 8861개 경로당 중 1300여 곳에 에어컨이 아예 없어 노인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광주, 전북 지역 경로당은 각각 5%, 22.5%가 에어컨을 갖추지 못해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것이 무색해졌다.

○ 한국인, 날씨 스트레스 커진다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호소도 잇따랐다. 서울 강남구의 회사원 김성찬 씨(40)는 “사소한 일에도 아주 예민하게 행동하게 됐다. 독한 날씨 때문에 성격이 변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취재팀이 기상청과 함께 이날 전국 90곳의 기온과 습도를 토대로 ‘불쾌지수’를 분석한 결과 서울 82, 대전 85, 대구 82, 부산 83 등 대부분 지역에서 80이 넘었다. 불쾌지수가 75를 넘으면 해당 지역 인구의 절반이, 80이 넘으면 대다수가 짜증을 표출한다. 5, 6일 역시 불쾌지수가 80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환경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환경 변화가 심할수록 적응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온도와 습도가 높아지면 체온 조절이 어려워 긴장 상태가 된다. 열대야까지 지속될 경우 충분한 수면이 어려워 생체리듬마저 깨진다. 안정민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폭염에 노출되면 혈관이 확장되고 심장박동이 증가한다. 극한 날씨가 우리 몸에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날씨로 인한 개인 스트레스는 집단 스트레스로 확산될 수 있다고 의학계는 경고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폭력 범죄 중 30%가 6∼8월에 집중된다. 더운 날씨에 술을 마시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는 이유로 이웃을 폭행하는 사건도 최근 자주 발생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많은 해외 연구에서 폭염이 강할수록 폭력이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날씨는 인간의 심리, 충동 성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 ‘사계절’에서 ‘냉탕-열탕’으로 변한 한반도

문제는 앞으로 한반도에 극한 기후가 자주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 올 1월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18도까지 떨어지는 등 전국에 강력한 한파가 닥치면서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겨울 한파→짧은 봄→긴 여름과 폭염→짧은 가을→겨울 한파’ 식의 ‘극한 기후 사이클’이 심화될 것으로 진단했다. 바로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지구 온도 최고 기록은 21세기 들어 2005, 2012, 2014, 2015년 등 네 차례나 경신 중이다. 기상청 기후정책과 박성찬 사무관은 “지구 기온 자체가 올라가니 한반도 내 폭염이나 열대야 발생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또 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녹아 북극 상공의 찬 공기가 중위도 지역으로 내려오다 보니 한반도에 한파가 자주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상청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기후변화 예측 시스템을 한반도에 적용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여름은 갈수록 길어져 2070년 이후에는 5개월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는 여름이 3개월간 지속된다. 겨울은 3개월에서 2개월로 줄지만 강력한 한파는 오히려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생활고로 냉난방을 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일수록 극한 기후에 따른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에서 만난 전모 씨(64·여)는 “지난주 지역 주민 한 명이 사망한 지 3일 만에 발견됐다. 폭염에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조량, 기온, 습도에 따라 우울증 환자도 큰 영향을 받는다”며 “날씨로 인한 스트레스가 개인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수도 있는 만큼 상대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종 zozo@donga.com·서형석 기자
강해령 인턴기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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