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마다 ‘뒷북 대응’]국정운영 혼선 거듭 원인은
보안이 필요한 국책사업이나 안보 현안뿐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민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논란이 된 민생 현안마다 ‘뒷북 대응’ 비판이 나온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이런 뒷북 대응이 국정 전반에 걸쳐 점점 고착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장관이나 기관장, 직업 관료 등이 대통령 눈치만 살피면서 ‘책임 행정’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 예견된 갈등도 ‘수수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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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시행 이후 여러 부작용이 우려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도 사전에 법안 제정 단계에서 좀 더 정밀한 검토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란법은 2011년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이 출발점이었다. 공직 사회의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대상자가 크게 확대되는 등 허점투성이가 됐다. 하지만 청와대는 당시 여론에 떠밀려 국회에 조속한 법안 통과를 당부하기까지 했다가 최근 ‘경제 위축’ 등 부작용이 우려되자 뒤늦게 시행령에서 보완하겠다고 했다. 특히 규제개혁위원회까지 나서 ‘중요 규제’로 분류해 심사하겠다고 하자 대체 정부 내 논의도 없었던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안일하게 판단하다 ‘뒷북’
가습기 살균제 사건, 폴크스바겐 소음·배기가스 시험성적서 조작 사건 등은 대표적인 ‘뒷북 대응’ 사례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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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문제를 방치하다가 불필요한 논란만 키우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폴크스바겐의 경유차 배출가스 조작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141억 원의 과징금만 부과하면서 “형사고발 사안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폴크스바겐은 결함시정 명령에 불성실하게 응했고, ‘정부가 물렁하다’는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다. 올해 1월에야 정부는 업체를 검찰에 고발했고 수사 과정에서 업체의 부정 행위가 드러났다.
어린이가 무리하게 매달리거나 올라타면 쓰러지는 이케아 서랍장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북미 지역에서 어린이 6명이 깔려 숨져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판매가 중단됐다. 하지만 한국에선 업체가 판매는 계속하면서 환불 조치만 하고 있어 ‘반쪽 리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외국 기업들의 간을 키워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 인사(人事)까지 난맥상
국정 운영이 혼선을 거듭하는 데는 인사 난맥상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사가 만사’라고 할 만큼 인사는 정부 국정 운영의 동력을 좌우하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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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자리를 날려 버린 ‘홍기택 사태’는 잘못된 인사로 국익에 손해를 끼친 사례다. 공직 윤리도, 전문성도 확인되지 않은 인물을 국제기구 고위직에 보낸 청와대의 무리한 낙하산 인사가 ‘참사’를 부른 셈이다.
현안이 발생했을 때는 관료들이 직을 걸고 치밀하게 사후 전략을 세워 돌파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이 청와대 눈치만 살피고 있는 ‘보신주의’가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부산 학교전담경찰관(SPO)의 여학생 성관계 파문은 사건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지만 이후의 경찰 대응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해당 경찰서장은 사건 직후 조직적인 은폐에 나섰고 사건이 공개된 뒤 경찰청장은 국회에서 유감을 표했을 뿐 대국민 사과도 없었다. 경찰 수뇌부가 처음부터 발 빠르게 진상 규명을 지시하고 공개 사과를 했다면 경찰 조직 전체가 질 부담은 덜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정 난맥상을 놓고 여권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집권 4년 차 관료들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가 위험수위에 달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무사안일 뒷북 대응’ 문제는 각 부처와 기관에 자율권을 주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여권이 4·13총선에서 참패한 뒤 관료들의 눈치 보기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수영 gaea@donga.com·임현석·우경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