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민낯’. 요즘 부쩍 많이 쓰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는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다. 처음엔 ‘화장을 하지 않은 여자의 얼굴’을 가리켰으나 남자도 화장을 하는 시대라서 ‘여자’라는 뜻풀이 부분을 뺐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의미를 넘어, 어떤 사람이나 조직의 진짜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널리 쓰인다.
‘민-’은 ‘꾸미지 않고, 딸린 것이 없거나, 다른 것에는 있는데 없는 것’을 가리키는 접두사다. ‘민얼굴’은 꾸미지 않은 얼굴을, ‘민소매’는 소매가 없는 윗옷을 뜻한다. 민소매를 ‘나시’라고 부르는 이도 많은데, 나시는 일본어 ‘소데나시(そでなし·소매 없음)’에서 온 말이다. 아무 꾸밈이 없는 물건은 ‘민짜’ ‘민패’, 정수리까지 벗어진 대머리는 ‘민머리’다.
얼굴을 가리키는 낱말도 많다. 신관, 낯, 낯짝, 광대, 쪽이 대표적이다. 신관과 낯이 얼굴을 점잖게 가리킨다면 낯짝과 광대는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 중 ‘쪽팔린다’고 할 때의 쪽이 가장 속된 표현 같다. ‘쪽을 못 쓰다’는 기가 눌려 꼼짝 못하는 걸 말한다.
‘표정 관리’와 ‘낯빛’이라는 낱말도 재미있다. 표정은 원래 감정이나 기분이 얼굴에 나타난 것이지만 그 말 속에는 ‘관리된 얼굴’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고객 만족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업무에 예속시키는 감정노동자의 표정이 그렇다. 이어령 선생은 낯빛은 감추고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배어 나오는 ‘내면의 표정’이라고 했다. 한자말로는 안색(顔色), 즉 얼굴빛이다. 흥미로운 건, 언중은 안색을 기분보다는 ‘(안색이) 좋다, 창백하다’ 등 건강 상태를 말할 때 주로 쓴다는 사실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