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 필요하지만 이대론 안된다]<1> 걸면 걸리는 모호한 규정 법률가도 헷갈리는 과태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모호한 법 적용을 둘러싸고 일어날 수 있는 가상 사례다. 김영란법은 제5조 1항에 할 수 없는 15가지 사례를 적시하고, 같은 조 2항에는 할 수 있는 7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일반 국민은 이 조항을 보고 자기 행위가 법적으로 허용되는지 아닌지, 형사처벌이나 과태료 제재 대상이 되는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 ‘무엇이 죄인지’ 모르는 규제의 모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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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에서는 의료종사자에게 의약품의 채택·처방 유도 등을 청탁하는 것이 부정청탁 유형 15가지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모호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권익위는 계약직도 대상이라고 했지만 개인병원을 운영하며 대학병원 협업교수로 출강하는 의사는 부정청탁 대상에 포함되는지도 모호하다. 국민이 일일이 권익위에 유권해석을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은 금품 및 이익에 대한 규정도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김영란법은 규제 금품으로 금전이나 유가증권, 부동산은 물론이고 숙박권, 초대권, 관람권, 골프 접대 등 유·무형의 경제적 이익을 망라하고 있지만 개별 상황이 불명확하다는 점이 문제다.
예를 들어 객관적인 가격이 영수증으로 처리되는 골프 접대는 규제가 명료하지만 사회통념상 접대로 평가될 수 있는 요트 낚시는 편법으로 빠져나갈 공산이 크다. 오영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왕 낚시 나가는 요트에 동석했다면 항공료나 택시비처럼 지불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 이익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학부모가 자녀 생일잔치 때 같은 반 아이들과 그의 부모, 선생님을 무작위로 초대해 참치회와 랍스터 등을 동일하게 대접했을 때 선생님이 처벌을 안 받으려면 일일이 원가를 물어보고 신고해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김영란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면 같은 반 학부모 가운데 언론인이나 다른 학교 선생님이 있어도 자신의 밥값을 일일이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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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동안 자르고 덧입힌 ‘누더기 법안’
정부가 밝힌 김영란법 적용 대상은 당사자와 배우자를 포함해 400만 명에 이르지만 구체적인 규제 대상이 어디까지인지는 애초 원안(정부안) 때부터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 논란 끝에 인허가 등 15가지 행위 유형을 금지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부정청탁 항목을 열거한 조항만으로는 개별 사례를 모두 포괄할 수 없고 적용 기준이 모호해 죄형법정주의나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의견이 많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 조항만 봐서는 허용되는 이익 수수가 어떤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고 금지와 허용의 경계선이 불명확하다”고 밝혔다.
김영란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진행 중인 대한변호사협회 강신업 공보이사는 “그때그때 애매한 부분은 판례를 따를 수밖에 없는데 대법원에서 규제 대상 범위에 대한 판례가 축적되기까지 국민은 불안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민이 상식에 맞게 행동하면 사법 판단을 받지 않아야 하는데, 일일이 법 위반인지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은 옳은 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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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김상겸 동국대 법무대학원 교수, 김용철 한국반부패정책학회장, 김주영 명지대 법학과 교수, 김현용 수산경제연구원 연구실장,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호상 국립극장장, 오영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경자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대표,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이병규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재완 대진여고 교사, 임영호 한국화훼협회장,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홍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