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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살다/장명희]직장인 부부, 2층 한옥을 직접 짓다

입력 | 2016-07-05 03:00:00


직장인 오영록 씨 부부가 6년에 걸쳐 인천 영종도에 직접 지은 2층 한옥. 첫번째 사진은 지붕을 올리는 모습. 한옥문화원 제공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아무리 그래도 부부 단둘이 한옥을 다 지었을까. 참여를 많이 했다는 뜻이겠지. 오영록 씨가 찾아와 “아내와 둘이서 한옥을 지었습니다”라고 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더구나 목구조 이층 한옥이라니.

오 씨는 2002년 한옥문화원에서 ‘한옥 짓기’ 강좌를 수강했다. 당시에는 한옥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 수 있는 곳이 없던 터라 한옥문화원이 한옥 짓기에 대한 이론과 실습 강좌를 열었다. 그 후 소식을 모르고 지냈는데, 지나는 길에 들렀다며 그때 강의 들은 것만으로 한옥을 지었다고 한다.

장남인 그는 부모님을 모셔야 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가까운 인천 영종도 신도시에 택지를 마련했다. 부모님께서 시골에서만 사셨던 터라 모실 집은 당연히 독립 주택이고 목재로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무원 월급으로는 전문가에게 맡겨 지을 형편이 아니었는데, 강의를 들으니 직접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무식해서 용감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고.

몇 달을 졸라 아내의 승낙을 받았다. 2006년부터 계획 세우고 정보 모으며 준비하다가 2007년 초부터 시작했다. 2008년 상량, 2012년 3월 입주. 총 6년이다.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는 업무여서 야간 근무를 자청하고 낮에 일을 했다. 혼자 일하는 남편을 보다 못한 아내가 2007년 중반부터 동참해줘 큰 도움이 됐다.

모눈종이에 축소도면을 그려 목재 물량을 뽑았고 부재와 부재를 짜맞추기 위한 장부구멍을 뚫을 때도 축소도면을 그려 그 위치를 잡았다. 그래도 차질이 없었다니 한옥 짓기의 이치를 터득했나 보다.

기둥이나 보를 치목(治木)할 때는, 목재 한쪽에 체인을 걸고 ‘우마’라고 하는 작업대에 걸쳐놓은 후 치목하고 다시 줄을 당겨 원하는 위치로 옮겨놓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그렇게 혼자서 ‘그랭이’까지 떴다. 그랭이는 기둥을 주춧돌에 세울 때, 고르지 못한 주춧돌의 면에 맞춰 기둥의 밑면을 다듬어주는 고난도 과정이다.

짓는 과정에 의문이 끊임없이 생기고 너무 힘들었지만 이미 너무 많이 나갔기에 그만둘 수는 없었다. 부부는 지붕 작업을 할 때가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기와 올리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동판을 깔았는데, 그의 아내가 용마루에 걸터앉아 지붕 작업을 하는 사진은 감동을 동반한 충격이었다. 2층 한옥의 지붕 높이는 적어도 7∼8m이고 경사는 가파르다. 남편에 대한 신뢰와 공감이 얼마나 크기에 지붕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초등학생이던 두 아들은 일을 마친 뒤 힘들어하며 들어오는 부모를 위해 밥과 청소를 해놓고 기다렸다.

방 두 개는 구들과 보일러를 이중으로 설치했다. 거기서 불을 때면 3일은 따뜻하고 자고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아파트에 살 때는 실내가 건조해서 자다가 코피 흘리는 일이 잦았다. 주변의 콘크리트 집들이 영종도의 습기로 옷이나 책 보관에 어려움을 겪는 데 비해 이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실내 습도가 조절돼 늘 쾌적하다. 한옥의 이점이다.

2층 한옥은 동네의 2층 양옥들 속에서 조화롭고 멋지게 서 있다. 초보자의 솜씨라고는 믿기 어려운 완성도다. 전문 목수가 아니다 보니 나무 널 사이에 틈새가 많은 게 아쉽기는 하지만 해결은 어렵지 않다. 자연석과 벽돌을 자연스레 섞어 쌓은 담장이나 외출할 때 대문을 밖에서 잠글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 창호가 문틀에 부딪쳐 상하지 않도록 설치한 완충장치 등은 어느 전문가의 작업에서도 본 적 없는 세심함이다.

오 씨의 한옥 짓기에 일관되게 흐르는 정신은 바로 ‘정성’이다. 초보자가 모눈종이에 그린 축소도면으로 물량이며 치수를 차질 없이 계산해 내고, 직장인으로서 6년간 건축을 이끌고 아름답게 마무리한 힘을 정성이 아닌 무엇으로 설명할까.

밥과 청소를 해놓고 기다리던 아들들은 어느새 자랐고, 큰아들은 내가 방문했던 다음 날 군에 입대한다고 했다. 부모님이 직접 지은 집에 산다는 사실에 대한 자긍심은 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아들들은 ‘정성’이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마음 기울여 얻는 일이 별로 없는 시대를 사는 그들이 받은 가장 귀한 유산이 아닐까.

장명희 한옥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