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철 고려대 교수 제자 16명… 10주기 맞아 ‘그의 철학과 삶’ 발간
고 신일철 고려대 명예교수(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1993년 강원 춘천시에서 열린 세미나에 갔다가 제자들과 인근 산 아래에 나란히 섰다. 홍은영 고려대 철학과 강사 제공
“맞습니다. 로티는 서양 주류 철학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고, 동양적 사유와 접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2000년 어느 토요일 서울 중구 대우재단빌딩 회의실. 중국 철학 중 양명학을 전공한 정인재 서강대 철학과 교수(현 명예교수)가 묻고, 미국 버지니아대 로티 교수 아래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이유선 박사(현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가 답했다. 옆에서 동서양의 다양한 시대 철학을 전공한 학자 10여 명이 모여 대화를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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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이어지는 이 모임의 시작은 단순했다. 신 교수가 환갑을 맞은 1991년 제자 몇몇에게 가끔 모여 함께 공부하자고 얘기를 꺼낸 것. 그해 가을부터 매달 첫 번째 토요일에 모였다. 이선관 신중섭 최희봉(강원대) 김창래 오상무 임홍빈 하종호(고려대) 여영서(동덕여대) 박병철(부산외국어대) 김병환(서울대) 양성만(우석대) 김학권 김정현(원광대) 최용철(전북대) 이재영(조선대) 박성수(한국해양대) 김성진(한림대) 윤평중 교수(한신대)와 홍은영 고려대 강사 등 10여 명이 참석했고 30여 명이 모임을 거쳐 갔다. 고려대 철학과 61학번인 정인재 교수부터 88학번으로 신 교수에게 마지막 석사학위를 받은 한곽희 부산외국어대 교수까지 30년 가까운 차이가 나는 철학자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1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신일철의 철학하기’를 주제로 열린 10주기 추모 학술대회. 고려대 제공
유족의 도움을 받아 1년 반에 걸쳐 신 교수의 저술 목록을 정리한 이재영 교수는 “선생은 좁은 전공 영역의 경학(經學)에만 몰두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소크라테스처럼 끊임없이 제자들 및 사회와 대화하는 철학을 했다”며 “현실에 대해 철학적 견해를 제시하고 사회가 나아갈 바를 제시한 기고문 등을 포함해 신 선생이 쓴 글이 1000편에 가까워서 놀랐다”고 말했다.
신 교수가 은퇴한 뒤 종종 만났던 이유선 교수는 “신 교수를 ‘진보적 자유민주주의자’로 새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선생님이 공산주의에 비판적인 보수적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닫힌 이데올로기’의 한계를 넘어서려 했을 뿐”이라며 “선생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에 바탕을 두고 맹목적인 자유방임의 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철학적 대안에 골몰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