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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어디로” 고개 떨군 잔류파… “EU는 죽었다” 탈퇴파 환호

입력 | 2016-06-25 03:00:00

[BREXIT/英 EU 탈퇴 글로벌 쇼크]브렉시트 찬성한 영국 유권자수 1741만742명
[희비 갈린 ‘브렉시트’]전승훈 특파원 런던 르포




전승훈 특파원

전승훈 특파원

“영국 독립의 새로운 새벽이 열렸습니다! 우리는 총을 쏘거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독립을 이뤄냈습니다.”

24일 오전 4시(현지 시간·한국 시간 24일 정오) 브렉시트 국민투표 ‘탈퇴(Leave)’ 캠페인 본부가 있는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국회의사당) 밀뱅크타워.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당수가 “EU는 이제 끝났다. EU는 사망했다”고 말하자 지지자들이 “아웃! 아웃! 아웃!”을 외쳐댔다. 이날 아침까지 국회의사당 광장에 몰려든 탈퇴파들은 샴페인 잔을 들고 환호하며 “지긋지긋한 브뤼셀이여 안녕!”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환호했다.

반면 런던 템스 강 건너편 사우스뱅크의 로열페스티벌홀에 있는 ‘잔류(Remain)’ 캠페인 본부는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TV 스크린을 보고 있던 지지자들 중 일부는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머리를 감싸기도 했다. 잔류에 투표한 줄리어스 벨트람 씨(39·여)는 “EU를 떠난 영국이 앞으로 어디로 갈지 도대체 모르겠다”며 당황해했다.

여론조사 예측은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했다. 잔류 진영은 브렉시트가 되면 영국 경제가 망가질 것이라고 경고했고, 이에 맞서 탈퇴 진영은 이민자 통제와 영국 주권 회복을 외치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투표 일주일 전인 16일 발생한 조 콕스 하원의원(잔류 지지) 피살 사건 이후로는 잔류 의견이 근소하게 앞서기도 했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어 보니 ‘콕스 효과’는 없었다. 결과는 콕스 의원이 염원했던 잔류와 통합이 아닌 ‘탈퇴’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막판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은 핵심 이슈는 ‘대량 이민’에 대한 통제권 확보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이번 국민투표는 지난 43년간 EU 단일시장과 자유무역에 대한 대가로 ‘자유로운 이동권’을 받아들였던 것에 대해 영국인들이 과연 행복했나를 묻는 투표가 됐다”고 지적했다.

UKIP는 콕스 의원의 사망 직후 난민 행렬 사진에 ‘한계점(Breaking Point)’이라는 문구를 적은 포스터로 반(反)이민 정서를 노골적으로 자극했다. 탈퇴파는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뺏고 임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주택난까지 불러오고 있다며 이민자 이슈를 힘껏 부각시켰다.

40대 젊은 총리의 ‘위험한 도박’은 완전한 통합을 꿈꾸던 EU뿐만 아니라 영국 사회를 완전히 갈라놨다. 이번 국민투표는 지역별, 소득별, 교육 수준별, 연령별로 쪼개진 영국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우선 지역별로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탈퇴’가 각각 53.2%와 51.7%로 우세했고, 런던과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서는 ‘잔류’가 많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체제에서 자유무역의 이점을 고스란히 누려온 런던 스코틀랜드 등 부유한 지역은 EU 단일시장 ‘잔류’를 지지한 반면 경제가 침체된 옛 산업지대인 북부와 중부 도시는 ‘탈퇴’로 기울었다”고 분석했다.

세대별로도 표심이 크게 갈렸다. 투표 직후 현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8세에서 24세까지의 젊은층은 잔류 지지가 많았다. 하지만 65세 이상은 61%가 탈퇴를 지지했다.

가디언이 투표구별로 유권자들의 소득과 학력 수준을 분석한 결과 영국의 EU 탈퇴를 이끈 중심 세력은 저소득층과 저교육층이었다. 고등교육을 받은 주민이 35% 이상 있는 투표구의 주민은 거의 모두 잔류 성향을 보였다. 반면 고등교육을 받은 주민이 35% 미만인 투표구에서는 탈퇴 성향이 눈에 띄게 높았다. 잔류가 무려 75%에 육박한 런던의 금융가 ‘시티 오브 런던’ 투표구는 고등교육 주민의 비율이 70%에 육박했다.

소득을 보면 연봉 중간값이 2만5000파운드(약 4000만 원)를 넘어서는 투표구에서 잔류 성향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고소득자 비율이 전국 최고인 웨스트민스터는 잔류가 69%를 차지한 반면 고소득자 비율이 가장 낮은 블랙풀은 탈퇴가 67.5%였다. 특히 청년실업이 33%에 이르고 가장 궁핍한 지역인 잉글랜드 동부의 표심이 투표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가디언은 “영국의 EU 탈퇴는 지난 4개월간의 브렉시트 탈퇴 캠페인 때문이 아니라 영국 내에서 40년간 쌓여온 ‘유럽 회의주의’가 현실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하는 스코틀랜드의 투표율은 65.7%로 다른 지역보다 낮았다. 그러자 EU 잔류 진영인 노동당은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집권당인 스코틀랜드독립당(SNP)이 스코틀랜드 독립을 다시 추진하려는 속내로 국민투표 캠페인에 소극적이었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실제로 앨릭스 새먼드 전 SNP 대표는 “영국의 브렉시트로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 투표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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