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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기자의 談담]“나라-사람-제품이 아름다운 ‘K뷰티’… 학문으로 뒷받침해야”

입력 | 2016-05-30 03:00:00

글로벌 화장품 ODM시장 1위에 오른 코스맥스 이경수 회장




2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코스맥스 본사에서 만난 이경수 회장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유럽이나 미국 소비자들이 느껴보지 못했 던 경험을 주면서 환경과 나눔을 생각하는 K뷰티의 미덕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성남=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선미 기자

《 어렵게 외국에 나가 유명 상표의 셔츠를 사왔는데 뒤늦게 상표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표시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1970, 80년대에 있었다. 근면성을 바탕으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펴던 당시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던 일화다. 그런데 21세기 뷰티업계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랑콤, 이브생로랑, 슈에무라, 에스티로더, 맥…. 하이테크와 최신 마케팅의 집약체인 글로벌 유명 화장품 중 상당수가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고객 회사의 주문에 따라 생산만 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 아니라 자체 기술로 화장품 ‘레시피’를 개발해 생산 및 납품하는 제조자개발생산(ODM)이다. 이 ODM 부문에서 한국의 ‘코스맥스’가 최근 매출 세계 1위에 올랐다. 2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코스맥스 본사에서 이경수 회장(70)을 만났다. 》

“‘뜨거운 사람’ 뽑는다”

인터뷰를 하던 날엔 마침 코스맥스 경력사원 면접이 있었다.

―수시로 직원을 뽑나 봅니다.


“저와 관련 임원 네댓 명이 필요할 때 뽑습니다. 면접장에서는 저도 한 표, 다른 임원도 한 표입니다. ‘채용하자’ ‘반대 안 한다’ ‘반대한다’ 이렇게 세 가지 입장을 각각 냅니다. 누군가가 반대하면 이유를 들어보고 일리가 있으면 선발하지 않습니다.”

―면접 때 주로 뭘 보나요.

“밝은 인상을 중요하게 봅니다. 단정한 복장과 정직함, 말의 논리성을 보고요. 스펙을 위한 스펙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학교나 학점은 봅니다. 열심히 노력한 걸 왜 인정하지 않나요. 단, 학점이 나쁘다면 묻습니다. 공부 안 하고 뭐에 미쳐 봤느냐고. 연극이나 그림, 사회봉사에 미쳐 봤다면 회사 일에도 뜨겁게 미칠 수 있으니까요. 밴드 활동에 미쳤던 지원자를 뽑은 적이 있는데 지금 영업 부문장으로 잘하고 있어요. 바둑이나 당구도 어느 수준에 올라가려면 미쳐야 하잖아요. 한 단계 더 오르려고 전념한 사람은 대충 한 사람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황해도 출신의 이 회장은 서울대 약대(66학번)를 나와 동아제약 영업사원, 오리콤 광고기획자(AE), 대웅제약 임원 등으로 20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가 46세 때 코스맥스를 창업했다. 내년 창립 25주년을 앞두고 코스맥스는 ODM업계 세계 1위(지난해 실적 기준)에 올라서는 개가를 올렸다. 최근 공개된 실적에 따르면 코스맥스의 지난해 매출은 5333억 원으로 그동안 1위였던 이탈리아 회사 인터코스의 매출(5045억 원)보다 288억 원 많았다. 2004년 프랑스 로레알사(社)에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하고 그해 중국에 진출한 지 12년 만의 일이다.

―놀랄 만한 성장입니다.


“올해 코스맥스그룹 전체 매출이 1조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1992년 창업할 때엔 OEM과 ODM을 같이 했는데 이젠 거의 다 ODM이고 일부 온라인 화장품에 대해서는 브랜드 개발과 제품 생산, 마케팅까지 모두 해주는 자가브랜드생산(OBM)도 합니다. 최근 9년간 회사가 연평균 20%씩 성장했는데 앞으로 3년은 이런 추세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만의 공(功)이 아니죠. K뷰티 덕분입니다.”

“수도권大에 화장품학과 생겨야”


이 회장 사무실 책상 뒤쪽 벽면에는 도성욱 작가의 큰 소나무 그림이 걸려 있다. 창가 너머로는 냇물이 보였다. “저기 검은색 물고기가 보이죠? 얼마나 물이 맑아요.” 헤엄치는 물고기가 4층에서도 보였다. 그가 말했다. “오늘 만나면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K뷰티에 대해서요.” “아, 좋습니다.” 나는 의자를 바짝 당겨 앉고 귀를 열었다.

“K뷰티, 즉 코리아 뷰티잖아요. 그런데 나라 이름에 뷰티란 말이 붙어 어울리는 나라가 몇 곳이나 있을까요?” 질문을 듣고 생각해보니 많지 않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세 가지가 아름다워야 나라 이름에 뷰티를 붙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는 나라.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아름다워 산천(山川)을 다니면 좋은 정원을 산책하는 것 같잖아요. 둘째는 그 나라에 사는 사람. 글 그림 춤 노래,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재능이 많아요. 셋째는 그 사람들이 만든 제품. 이렇게 셋 다 아름다운 나라는 별로 없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조원이 코스맥스란 사실을 밝히길 꺼리던 화장품 회사들은 요즘엔 이를 오히려 내세운다. 프랑스 로레알그룹은 4월 파리에서 열린 글로벌 전략회의에서 코스맥스를 ‘로레알의 판타스틱 파트너’로 칭하며 유럽에 와서 화장품 공장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또 일본의 유명 화장품 회사는 올해부터 코스맥스와 함께 제품 개발에 나섰다.
 
―그런데 대형서점에 가서 화장품 산업 관련 책을 찾았더니 그런 카테고리는 없더군요. 국내 화장품 산업의 현주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잘 보셨어요. 화장품 산업이 이토록 커졌는데 수도권 대학교에 화장품 대학이 없어요. 화장품은 종합예술이라 젊을 때부터 소양을 가르쳐야 하는데 말이에요. 글 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화학자, 물리학자가 한데 모여 연구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직접 교육기관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까.

“제가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습니다. 제 나이가 50만 됐어도(웃음). 최근 2년간 서울대 약대 동창회장을 지내면서 대학 분들 만나면 관련 학과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화장품학과 신설에 관심을 보이는 학교가 있어요. 설립되면 우리 연구진이 그 학교에 가서 가르치거나 학생들이 코스맥스 연구소를 찾아와 실습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습니다.”

“한 사람이 다 하는 건 불가능해”

이 회장은 2014년 코스맥스를 인적 분할했다. 코스맥스를 화장품 ODM 사업 전담 법인으로 만들고 코스맥스BTI를 그룹의 지주회사로 세웠다. 일진제약을 인수해 사명을 바꾼 ‘코스맥스바이오’와 또 다른 인수 기업 ‘뉴트리바이오텍’은 코스맥스BTI 내 건강기능식품 ODM 계열사들로 편입시켰다.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 양대 사업을 별도로 떼어 내니 미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화장품 생산법인 간 횡적 유대도 공고해졌다고 한다.

코스맥스는 현재 100여 개국 600여 개 화장품 회사에 연간 4억2000만 개의 화장품을 생산 공급한다. 세계 인구 18명 중 한 명은 코스맥스 화장품을 쓰는 셈이다. 특히 외환위기 때 공급 가격을 동결하고 최소 주문물량제한을 없애 협력사들의 신뢰를 얻었다.

―화장품 제국의 황제 같습니다. 자체 브랜드를 가질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나요.

“과한 말씀입니다. 독자 브랜드를 가질 생각이야 많이 해 봤죠. 지금도 가끔 해 보고…. 하지만 우리는 화장품 제조 생산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제 다음 세대에 시장 환경이 바뀌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요. 사람도 회사도 각각의 역할이 있잖아요. 한 사람이 다 하는 건 불가능해요. 우리는 화장품을 잘 만들고 디자인, 용기, 유통 등 각 분야의 우수한 회사들이 모여 힘을 합치면 곧 제품이 경쟁력을 갖죠. 화장품은 종류가 많고 계절을 타서 기계를 1년 내내 가동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여러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지금의 40대 중반에게도 창업을 권하겠습니까.

“저도 늦게 시작한 거라 돌이켜보면 아찔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이에 대한 제한은 그때보다 지금은 더 줄었어요. 건강이 뒷받침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여러 도구도 생겨났고요. 전 우연찮은 기회에 창업했는데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 건 과거 직장생활 때의 경험과 그때 만난 사람들이었어요. 동아제약 영업사원을 하면서는 소극적 성격을 적극적으로 바꾸고 사람을 만나 신뢰를 쌓는 것을 배웠습니다. 당시 광고사관학교로 통하던 오리콤에서는 제품을 철저하게 잘 아는 것이 판매의 기본이란 걸 알게 됐고요. 대웅제약 임원을 하면서는 오너가 일의 경중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혹독하게 배웠습니다. 샐러리맨 때 경험과 사람을 많이 만든 사람은 회사를 옮겨도, 창업을 해도 빛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K뷰티는 따뜻한 마음”


이날 코스맥스 본사에서 이 회장의 부인인 서성석 코스맥스BTI 회장과 잠깐 마주쳐 인사를 나눴다. 이 회장이 동아제약 영업사원이었을 때 서울 종로구 명륜동 같은 하숙집에 지내던 당시 숙명여대 학생이 지금의 서 회장이다. 이 회장은 “집사람은 코스맥스 공장 부지부터 같이 보러 다녔다. 초기에는 작업라인에서 현장반장도 했는데 그 누구보다 작업능률이 높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바쁜 자신 때문에 부인이 지금껏 거의 혼자 저녁식사를 하게 한 걸 미안해한다. 6년 전부터 자연이나 노부부 등의 사진을 찍고 카카오스토리에 짧은 글을 썼더니 부인은 이것들로 사진첩을 만들어 남편에게 선물했다. 이 회장은 복지(Welfare)와 생태(Ecology)에 투자(Invest)하는 ‘코스맥스 WE & I’라는 법인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K뷰티의 미래를 어떻게 봅니까.

“K뷰티는 결코 한류 스타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에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 자연,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어우러져 있으니까요. 또 빠르면 5년 이내에 국내에서 화장품 시장과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매출 비중이 같아질 겁니다. 피부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그날 상태에 맞는 맞춤형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을 드론으로 배달받는 시대가 곧 옵니다. 우리도 이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과거 광고회사에 다닐 때 ‘인생은 60부터’라는 카피를 써봤다가 채택되지 않은 적이 있다고 했다. 세계를 누비며 K뷰티를 전하는 그를 보니 ‘인생은 70부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