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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홍수용]“대통령이 김종인·안철수 찾아가 ‘혁명적 규제개혁’ 제안하라”

입력 | 2016-05-23 03:00:00

국가미래연구원장 김광두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연구원 경비를 대기 위해 중소기업의 후원을 받으면서 ‘민원하지 말 것, 간섭하지 말 것’이라는 조건을 둔다. 대기업 돈은 받지 않는다. 그는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와 연구원의 독립성을 믿어주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홍수용 논설위원

네이버 인터넷 검색창에 ‘박근혜, 김광두, 가정교사’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22일 현재 117건의 뉴스가 뜬다. ‘박근혜, 김광두, 하마평’을 넣으면 더 많은 422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였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69). 박근혜 정부 출범 때 논공행상에서 배제됐고 스스로도 공직에 관심이 없다고 밝히지만 개각설이 돌 때마다 차기 후보군에 이름이 올라가는 경제학자다.

그가 만든 국가미래연구원의 정체성은 ‘개혁적 보수’다. 미국 보수를 대변하는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과 진보 성향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중간쯤 된다는 의미다. 김 원장은 연구원을 통해 양적완화, 경제민주화, 사내유보금 과세 등 경제 핫이슈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건전한 비판이라는 평가의 반대쪽에는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이라거나 ‘이러다 결국 공직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20일 서울 마포대교 북단 인근에 있는 사무실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이날도 그는 친박(친박근혜)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한국경제 IMF 때보다 더 나쁘다

―여권을 줄기차게 비판하고 있다.

“대선 전인 2010년 말 국가미래연구원을 처음 만들 때 당시 유력주자였던 박근혜 의원에게 ‘대선 때는 캠프에서 정책 측면에서 돕지만 이후에는 민간 싱크탱크로서 독립성을 갖고 활동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원래 박 대통령도 연구원 회원이었지만 독립성을 위해 회원에서 빠졌다. 독립적인 기구가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비판적 목소리를 내면 옛 동료 중에 ‘우리 편 아니냐’며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독립적이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 상황을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어떤가.

“더 나쁘다. 외환위기 당시는 세계 경제 상황이 양호해서 한국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만 벗어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세계 경제가 다 부진하다. 이 질곡을 벗어나도 좋아진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 기업, 가계부채가 너무 많고 30대 그룹 중 17개가 영업이익으로 빚도 못 갚는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한진해운이 구조조정한다고 하는데 나머지는 어떻게 할 건가. 정부의 대응 능력이 너무 떨어진다.”

정부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외환위기 때는 기업이 도미노식으로 무너져 위기가 겉으로 드러났지만 지금은 위기가 잠재돼 있어 선제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처음 겪는 위기여서 정부가 당황했던 반면 지금은 정부 대응 능력이 좋아졌다고 자신한다. 김 원장은 “정부가 판을 안이하게 읽고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적인 설비 과잉, 국내 투자 부진, 일자리 한계, 가계 부진, 세수 부진으로 연결되는 악순환 고리가 얼마나 공고한지 못 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박 대통령이 규제개혁회의에서 드론, 자율주행차 등 신산업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했다. 경제에 좀 도움이 되지 않겠나.

“드론, 자율차? 그거 한두 번 한 얘기인가. 규제가 회의를 통해서 풀린 적이 있나. 푸드트럭 규제 풀자고 하면 관료들은 박수치고 각오를 다지는 척할 것이다. 공무원들은 이해관계자들의 포로여서 실질적인 성과가 나지 않는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정권 초기에 혁명적 접근을 했어야 하는데 실기(失機)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노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서민 대통령으로서 민원과 관련된 복잡한 규제를 국민 편의 관점에서 고칠 것으로 기대했는데 왜 못하느냐’고 물었더니 노 대통령이 손사래를 치면서 ‘어휴, 공무원들 못 말립니다’라며 한숨을 쉬더라. 시늉만 낸다는 얘기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구조조정을 강조하는 등 야권에서 우파 성향의 경제정책을 화두로 던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간극이 좁혀지고 있나.


“김 대표가 그쪽에 가서 인식의 차이가 줄어든 측면이 있다. 하지만 총선 당시 한 삼성 전장사업을 광주에 유치하겠다는 발언은 말이 안 된다. 광주에서 교육의 질을 높이고 인프라를 잘 만들어서 좋은 회사가 올 여건을 만들겠다고 한다면 합리적이지만 기업을 끌고 오겠다는 것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총선 때 여야 공약을 본 적이 없다. 공약을 지킨 적이 없지 않나.”

―‘경제민주화’는 필요한 가치인가.

(김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에 ‘기회, 경쟁, 분배’라는 세 단어를 쓰고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15분간 설명했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김 대표는 재벌을 규제해서 공정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고 전통적인 진보세력은 상대적 박탈감을 완화하는 쪽으로 분배의 정의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지식서비스 시장에서 수입이 공정하게 분배되는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창조적 활동이 공정하게 보상받아야 한다. 조영남 씨의 대작(代作) 논란에서 보듯 자본이 과실을 대부분 차지하고 지식과 문화를 직접 생산하는 쪽이 소외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정부는 분배 문제에 집중하면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옳은 얘기지만 누구도 정밀하게 검증해본 적은 없는데….


“이런 논리에 과장이 섞여 있는지 따지려면 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한다. 지금은 기술력이 중요하다. 법인세 올려도 된다고 얘기하는 진보의 논리는 기업이 각종 비용을 공제받은 뒤 실제 부담하는 세율, 즉 실효세율이 낮다고 본다. 예를 들어 연구개발(R&D) 투자를 많이 하는 삼성전자에 인센티브를 많이 줘서 법인세 실효세율이 낮다는 얘기다. 그런 삼성전자에 인센티브를 안 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삼성전자의 R&D 부담이 늘 텐데 애플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삼성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봐야 한다.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조정 밀실에서 결정해선 안돼

―지난 총선 당시 새누리당 강봉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제기한 양적완화 논란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깊이 있게 생각하고 던진 화두가 아니다. 돈을 많이 풀면 좀비기업이 연명하는데 구조조정이 되겠나. 일본은 경제 회복을 위해 이른바 ‘3개의 화살’을 쐈는데 마지막 화살인 산업 구조개혁이 실패했다. 실패한 이유가 바로 양적완화였다.”

―정부는 일단 국책은행의 자본을 늘려주는 ‘실탄 충전’을 한 뒤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구조조정 안 하겠다는 말이다. 어떤 기업을 버리고 어떤 기업을 살릴지 하는 그림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이 그림을 토대로 돈 문제를 논의해야 하는데 거꾸로다. 이명박 정부 당시 이미 구조조정 할 대상이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그 폭탄을 그대로 지금 정부로 넘겼고 STX 빼고는 구조조정을 전혀 못했다. 산업은행에 구조조정을 맡긴 것이 실책이다. 산은이 자율적으로 할 수 없는데 산은에 주도권을 준 척하는 것 자체가 오류다. 산은 자회사에 편입된 부실기업에 정치권이 영향력을 행사해 사외이사, 감사로 보내는 구조하에선 아무것도 안 된다.”

―뭘 고쳐야 하나.


“청와대 서별관회의(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대통령경제수석, 금융위원장 등이 참여하는 비공개 거시경제정책협의회)가 키를 쥐고 있다. 여기서 모든 게 결정돼 산은에 지시하는 구조다. 서별관회의의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이 기록을 3∼6개월 뒤 공개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당국자들이 책임감 있게 큰 그림을 그리면서 논의하고 신중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일단 살리고 보자’는 식의 보신주의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정책을 잘 추진하고 싶어도 국회가 발목을 잡아서 안 된다’는 말에 동의하나.

“국회의 잘못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부 움직임이 이벤트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더 큰 문제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공무원들은 정책을 조정하기 마련인데 발언의 일관성이 떨어진 상태에서 강한 어조로 말하다 보니 혼선이 빚어진다. 기획재정부가 소통을 통해 메시지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여권 내 대통령에게 직언할 인물이 없다.

“대선 전 캠프 때 7인회가 있을 당시에는 자유토론이 가능했고 나는 당시 박 후보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다. 그만큼 당시 리더십이 수평적이었다. 지금은 수직적 리더십 구조다. 누군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야기하자는 건의를 안 하고 모두 익숙한 틀에 안주하는 것 같다.”

―경제 현상에 대한 박 대통령의 ‘콘텐츠’가 부족한 것 아닌가.


“그건 터놓고 이야기해 봐야 알 수 있다. 캠프 당시 공부할 때 보면 박 대통령은 매우 열정적이었다. 출장 갔다 온 직후에도 4, 5시간씩 토론하고 공부했다.”

“공직 제의 와도 내가 안 할 것”


―개각 때마다 하마평에 오른다. 대통령이 김 원장에게 공직을 제의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보나.

“글쎄. 대통령이 어떻게 하든 나는 안 한다. 내 나이 일흔이다. 정부에서 부품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도 보람 있겠지만 처음부터 내 손으로 일군 민간 싱크탱크의 초석을 다지고 독립성, 신뢰성을 높여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지식인 집단 하나 만드는 것이 내 보람이다. 정부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신뢰성이 떨어진다.”

―현 정부의 남은 임기가 1년 9개월이다. 콕 집어서 한 과제에 집중한다면….

“규제에서 ‘법에서 정한 몇 가지 빼고는 다 하라’라는 네거티브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내 자존심 버려서라도 하겠다는 각오로 전략을 짜면 왜 못하겠는가. 대통령이 김종인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집으로 찾아가서 ‘나라를 위해 혁명적 개혁을 같이하자’고 하면 어떤가. 대통령의 품격을 너무 따지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면 국민들이 대통령을 달리 생각할 것이다.”

인터뷰 말미 박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 여야 3당 원내대표를 초청했을 때 찍은 사진 이야기를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오른손에 자신의 왼손을 살짝 얹고 우상호 더민주당 원내대표의 왼손에 자신의 오른손을 갖다댄 모습이었다. “대통령이 두 사람의 손바닥을 꼭 쥐고 흔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캠프 때는 손잡고 농담하곤 했는데…. 난 그런 게 좋아 보이더라고.”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