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구조조정’ 모범 사례, 세계 1위 철강사 아르셀로미탈
옛것과 새것의 공존 룩셈부르크 외곽 신도시 벨발 전경. 폐쇄된 옛 제철소 설비와 낡은 철로 등이 보전되는 가운데 대학, 창업센터, 쇼핑몰 등이 들어서며 활기 넘치는 산학연 클러스터로 재탄생했다. 룩셈부르크=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발레리 마생 부회장
한때 유럽 최대 철강회사 아르베드(현 아르셀로미탈) 공장이 있었던 벨발은 이제 룩셈부르크 연구개발(R&D)과 창업의 산실로 거듭났다. 한국,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지는 못했지만 쇳물을 뽑아내던 낡은 고로를 혁신 아이디어가 샘솟는 용광로로 탈바꿈시키며 생산적 구조조정의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
○ 낡은 제철소, 혁신의 상징으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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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이 해체되는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아르셀로미탈과 룩셈부르크 정부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구조조정 이후’를 설계했다. 2002년부터 자국 최대 규모의 콘서트홀을 비롯해 아파트, 쇼핑몰, 영화관 등을 차례로 세웠다. 지난해에는 룩셈부르크 국립대학이 이전하며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 대학에 다니는 일본인 유학생 간바라 안나(神原杏奈) 씨는 “사람이 너무 많아 생활하기 어려운 도쿄와 달리 이곳은 공부를 위해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곳의 가치는 단순한 도시 재개발에 그치지 않는다. 철강산업의 영광을 상징하는 용광로를 보존하면서 옛 공장 건물을 개조해 창업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룩셈부르크 정부는 이곳에 창업지원센터인 테크노포트를 세웠다. 1명이라도 1유로만 투자하면 하루 안에 창업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1-1-1 정책’이 이곳의 모토다. 디에고 비아지오 테크노포트 대표는 “창업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대기업 및 벤처캐피털(VC)의 투자도 주선하고 있다”며 “지난해까지 7800만 유로(약 1038억 원)의 투자 연결 실적을 거뒀다”고 소개했다.
거대한 용광로는 작동을 멈췄지만 제조업의 기반이 사라진 건 아니다. 아르셀로미탈은 이곳에 R&D센터와 트레이닝센터, 인사 관련 부서 등을 두고 본사로 활용한다. 고부가가치 빔을 생산하는 전기로 설비도 벨발에 있다. 낡은 제철소가 유럽을 대표하는 산학연 클러스터로 재탄생하며 유럽 제조업의 혁신 모델로 거듭난 것이다.
○ 구조조정-투자 ‘선택과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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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셀로미탈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있다.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스페인 게스탐프사 지분 35%를 8억5000만 유로(약 1조1363억 원)에 매각하고 대주주인 인도 미탈 가문이 11억 달러 규모의 신주를 인수해 자금을 수혈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통 큰 투자도 단행한다. 아르셀로미탈은 당초 용광로 2기를 폐쇄할 계획이었던 프랑스 플로랑주의 제철소에 되레 2억 달러를 투자해 알루미늄 도금 강판의 생산라인을 갖췄다. 여기서 만들어진 강판은 독일 아우디, BMW 등에 팔릴 정도로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발레리 마생 아르셀로미탈 부회장은 룩셈부르크 본사에서 본보 기자와 만나 “구조조정은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력을 감축하고 몸집을 줄이는 것은 혁신을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마생 부회장은 “룩셈부르크에서 생산하는 철강 제품은 200m 높이의 고층건물 자재로 활용될 정도로 부가가치가 높다”며 “기술 개발을 통한 혁신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과거 수차례 프랑스 등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에 따르는 격렬한 노사 분쟁으로 큰 홍역을 치렀던 아르셀로미탈은 사회적 대화도 강조했다. 마생 부회장은 “강제 해고보다는 자발적인 조기 퇴직을 유도하며 구조조정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회사와 정부, 노동조합이 머리를 맞대고 상시적으로 논의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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