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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광주… 박승춘 쫓아내고 野지도부에 “똑바로 못하나”

입력 | 2016-05-19 03:00:00

5·18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 갈등
여야 ‘셀프제창’… 보수단체 퇴장, 黃총리 기념사만 읽고 논란 입닫아
김종인 “정부 옹졸… 아집 사로잡혀”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왼쪽)이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려다 5·18민주유공자 유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박 처장은 기념식장에 입장하지 못한 채 행사장을 떠났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여러분, 모두 일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합시다!”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18일 거행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마지막 식순으로 ‘임을…’ 합창 순서가 다가오자 누군가 이같이 외쳤다. 그러자 참석자 4000여 명 대부분이 일제히 일어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20대 총선 당선자 161명 가운데 100여 명이 참석한 야권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동참했다. 전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결정한 ‘셀프 제창’ 방침에 여야 모두 공조한 형국이 됐다.

반면 정부 측 인사인 황교안 국무총리,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등은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보훈단체 관계자 50여 명은 집단 퇴장했다. 제창 불허 결정을 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기념식에 참석조차 못했다.

박 처장은 행사 시작에 맞춰 입장하려 했으나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며 항의하는 5·18 희생자 유가족 등 20여 명과 몸싸움을 벌이다 발길을 돌렸다. 국론 분열을 우려해 기존 ‘합창’ 방식을 고수한 박 처장은 퇴장하며 “참석하지 못하게 한 건 대단히 유감”이라면서 “국민의 의견을 들어 결정한 것이지, 개인의 독단적 결정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보훈처는 행사 후 “국민들이 일부는 노래를 부르고 일부는 부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가 왜 ‘임을…’ 기념곡 지정·제창 결정이 어려운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입장을 냈다.

황 총리도 기념사에서 “5·18 정신을 대화합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더욱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뤄 나가겠다”고 했지만 이날 기념식은 국론 분열을 고스란히 노출시킨 ‘반쪽짜리’ 행사로 끝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만 참석한 뒤 이후 3년째 불참했다.

광주에 집결한 야권 지도부는 정부의 제창 불허 방침에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더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행사 직후 “정부가 옹졸하고 아집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오늘은 ‘임을…’을 당당하게 부르고 다음에 저희가 지정곡으로 하겠다”며 “합창은 되고 제창은 안 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논리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사회통합을 위해 제창돼야 한다”고 했고, 박지원 원내대표는 “박 처장의 작태에 모든 국민이 분노한다”고 했다.

하지만 야권 역시 매서운 질타의 대상이 됐다. 한 5·18 유가족은 기념식이 끝나자 안 대표에게 다가가 “광주를 두 쪽으로 만들었는데 지켜보겠다”고 소리쳤다. 한 5·18 단체 관계자는 “더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 원내대표에게도 (결정을 막지 못한 책임을) 묻는다”며 항의했다.

지난주 광주를 찾아 “역사의 부름 앞에 더 행동하겠다”고 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서울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임을…’조차 부를 수 없는 현실에 저항하고 분노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가 주최한 기념식에서는 ‘임을…’을 합창단 없이 참석자들이 제창했다.

광주=차길호 kilo@donga.com·이형주 /송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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