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어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차 광주에 가기 위해 같은 고속철도(KTX) 열차를 탔으면서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새누리당 ‘정진석 비상대책위’와 ‘김용태 혁신위’의 출범 무산 이후 당청(黨靑)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는 비대위와 혁신위 추인을 위한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무산을 놓고 어제도 날 선 책임 공방을 벌였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비박계 위주로 비대위와 혁신위를 꾸린 정 원내대표에게 책임이 있다며 “사죄 아니면 사퇴”를 요구했다. 반면 비박계는 친박 패권주의에 모든 책임을 돌렸다. 이렇게 생각이 달라서야 당 혁신은 고사하고 한 지붕 밑에서 한솥밥을 계속 먹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4·13총선 민의가 만들어준 여소야대의 정치 지형은 국정의 주체인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 방식을 주문하고 있다. 당청이 본질적으로 주종(主從) 관계일 수는 없다. 김성태 의원이 말한 대로 비대위와 혁신위 구성에 ‘그분의 재가’를 받지 않았다고 정 원내대표를 하차시켜야 한다면 ‘자기 정치’를 한다는 이유로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사퇴시켰던 총선 전의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
손학규 전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대표는 어제 “총선의 결과를 깊이 새기고 국민의 분노와 좌절을 제대로 안아서 새판을 짜는 데 앞장서 나갈 것을 다짐한다”고 정계 복귀를 시사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새누리당과의 연정은 없다”면서도 “새누리당에서 쪼개 나오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10월쯤 새 정당 창당 가능성을 내비쳤다. 국민은 ‘도로 운동권당’으로 가는 야당을 원치 않듯이 ‘도로 친박당’의 여당도 원치 않는다. 새누리당이 스스로 쇄신하지 못하면 타율에 의한 ‘새판 짜기’의 제물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