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더 인터뷰]박천동 울산 북구청장
박천동 울산 북구청장이 달천철장을 소재로 한 ‘쇠부리축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북구 제공
울산대공원에 있는 울산박물관. 정문에서 보면 대형 사각형 통유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통유리는 북쪽으로, 통유리를 지탱하는 구조물은 서북쪽으로 엇갈리게 설치돼 있다. 박물관 상징 조형물에도 등장하는 이 통유리는 한반도 철기문화 효시인 북쪽의 울산 북구 달천철장(울산시 기념물 제40호)을 바라보고 있다. 구조물은 서북쪽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를 향하고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울산의 역사를 모두 아우르는 박물관이 되도록 하기 위한 설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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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철장을 시민들이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쇠부리 축제’로 승화시킨 인물이 박천동 울산 북구청장(51)이다. 올해 12회째인 이 축제는 13∼15일 울산 북구청 광장과 북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박 구청장이 울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 부위원장과 울산과학기술진흥위원회 위원으로 있을 당시 문화인들과 함께 제안해 2005년 6월 처음 열었다. ‘쇠부리’는 철광석이나 토철에 높은 열을 가해 쇳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재래식 철 생산 과정을 일컫는 경상도 방언이다.
달천철장은 삼한시대부터 철광석과 토탄을 캔 곳으로 기록돼 있다. 중국 고서인 ‘후한서’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달천철장에서는 삼한시대부터 철을 생산해 중국과 일본에 공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 문헌에 나오는 최초의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로 1452년 달천광산에서 철 1만2500근을 궁중에 납품했다고 돼 있다. 경주 황성에서 발견된 쇠부리 터 유적(4∼5세기)에는 달천철장에서 생산된 철과 같은 비소(As) 성분이 함유돼 있어 이에 쓰인 철 원산지가 달천철장이었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철 생산이 한동안 중단됐다가 1657년(효종 8년) 울산 사람인 구충당(求忠堂) 이의립(李義立)이 생산을 재개했다. 1970년부터는 이곳에서 생산된 철이 전량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납품되었다. 1993년에 철 생산이 다시 중단됐고 이후 사문석을 생산해 오다 2002년 9월 10일 결국 문을 닫았다. 현재 달천철장 터 주위에는 아파트 단지와 학교가 들어서 있다. 울산 북구는 달천철장에서 철 제련 작업을 하면서 인부들 사이에 전승되던 ‘쇠부리 놀이’를 축제로 승화시켜 2005년부터 매년 쇠부리 축제를 열고 있다.
2001년 10월에는 일본 히로시마(廣島)대 고고학연구실의 시오미 히로시(潮見浩) 회장이 울산시장에게 “달천 철광산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고대국가 형성기의 철 생산 및 유통을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며 ‘달천철장 보존 요망서’를 보내오기도 했다. 울산 북구는 50억 원을 들여 달천철장 일원 6만8292m²를 한국의 대표적인 철 테마공원인 ‘쇠부리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박 구청장은 “울산의 대표 산업 축제인 쇠부리 축제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고대 야철로를 복원했다”며 “달천철장이 철 테마공원으로 조성되면 한반도의 우수한 철기 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산업수도 울산의 대표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락 기자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