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 9집
라디오헤드 9집 ‘A Moon Shaped Pool’ 표지. 강앤뮤직 제공
한쪽 벽면 가득 톰 요크의 해진 비단결 같은 목소리가 흘러내린다. 기계적인 드럼과 베이스, 불안한 음정으로 평균율 사이를 기웃대는 기타와 옹드 마르트노(전자악기의 일종), 다지류 벌레처럼 벽을 탔다 사라지는 전자음 파편들….
컴컴한 아홉 번째 방문을 연다. 더듬어 잡히는 첫 번째 스위치를 켠다. 방아깨비처럼 튀어 오른다. 실 무더기 같은 선율들의 공세. 놀란다. 줄을 활대로 두드리는 ‘콜 레뇨(col legno)’ 주법으로 연주되는 현악기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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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는 경기 이천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서 공연했다. 전작 ‘The King of Limbs’를 낸 이듬해였다. 이들은 신작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보여준다. 열창하는 신들린 보컬 톰 요크. 동아일보DB
피아노와 현악의 쓰임이 크게 늘었다. ‘Glass Eyes’는 오랜만에 우울한 선율의 힘만으로 밀어붙이는 곡. 팔레트는 여성합창단의 가세로도 새로워졌다. ‘Decks Dark’도 그러하지만 음반의 하이라이트 ‘Present Tense’의 중반부가 ‘Paranoid Android’(1997년)처럼 아찔하다. 마디마다 바뀌는 코드의 좌표 축 위로 중력을 잃고 외줄 타는 음울한 멜로디의 서커스.
5년 만의 신작 ‘A Moon Shaped Pool’을 낸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 왼쪽부터 콜린 그린우드(베이스), 조니 그린우드(기타), 톰 요크(보컬), 필 셀웨이(드럼), 에드 오브라이언(기타). 강앤뮤직 제공
신작에서도 그렇다. 마치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노래처럼 페이드인, 못갖춘마디, 경과 화성으로 시작하거나 긴장음과 폴리리듬을 교묘히 뒤섞음으로써 으뜸음이 잡아당기는 중력을 가린 채 멜로디를 끝없이 부유하게 만든다. ‘Daydreaming’ ‘Identikit’의 떠다니는 분위기가 초대하는 곳은 비행기가 아니라 잠수함, 아니 잠수종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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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이지만 가정용 오디오보다 헤드폰으로 듣는 게 더 좋다. 양쪽 스피커 가장자리에 명멸하는 섬세한 귀곡성의 비현실적 입체감을 더 깊숙이 빨아들이려면. ♥♥♥♥♡(10점 만점에 8.7점)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