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 경계선 넘으니…
섬 안에 섬이 또 있었네”
‘곡산(谷山)’.
‘산골짜기’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소록도 사람들에게 이 말은 그리 간단치 않다. 한평생 짊어지고 견뎌냈어야 할 아픔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나균에 감염이 되면 부모형제, 일가친척에게 버림을 받고 쫓겨나와야 했다. 갈 곳이 없는 이들은 유랑걸식으로 연명을 할 수밖에 없었고, 몸이 불편하고 아프니까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 즉 공동묘지 옆과 도깨비 놀이터 같은 곳에 움막을 짓고 모여 살았다. 그곳에서 생활을 하던 이들끼리 서로를 곡산이로 불렀다.”
강 감사는 “일렬로 서서 보육원으로 갔다./노송들의 슬픈 노래 들으며/‘앞으로 가.’ 무서운 호령에/…(중략)/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자꾸만 멀어지는/철조망 경계선 넘으니/또 탱자나무 울타리/섬 안에 섬이 또 있었네”(모자 이별)라며 보육소로 들어가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 탱자나무와 아카시아나무는 철조망처럼 경계를 짓고 있었다.
보육소에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반쯤 썩은 메주콩을 훔쳐 먹은” 벌을 받으며 눈보라를 맞았다. 사지는 동상에 걸렸다. 결국 어머니가 머물던 병사지대로 옮겨져 어머니의 간병으로 동상을 이겨냈다. 하지만 병은 그때 찾아들었다.
수탄장의 설움 역시 그에게도 무심하지 않았다.
“기한 정해진 모자 상봉”에서 “‘배고프나….’ 묻는 어머니의 한마디에/금언의 교육 잊고/무심코 ‘네.’ 한 마디에/…(중략)/북풍한설 뜨락에서 손 들고 벌서다 졸음에 못 이겨/깨어보니 동상 걸렸었”던 날, “찢어지는 가슴 안고 못내 울음 터뜨린”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수탄장)
소록도(고흥)|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