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작가 찰스 램이 친구인 작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1772∼1834)를 두고 한 말이다. 콜리지에게 책을 빌려줬다간 여백에 메모가 빼곡해진 채로 돌려받기 일쑤였지만, 친구들은 그 메모를 귀히 여겼다. 콜리지의 메모는 나중에 단행본 다섯 권으로 출간됐다.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는 항해사 생활 중 독서에 탐닉하면서 플로베르 소설 ‘보바리 부인’의 여백에 메모를 채워 나갔다. 그의 첫 작품 ‘올메이어의 어리석은 행동’(1895년)은 그러한 메모의 결실이다. 소설 ‘롤리타’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플로베르, 조이스, 카프카 등의 작품 여백에 메모를 달아 그 내용을 문학 강의에 활용하고 책으로도 펴냈다. 그에게 여백은 요즘 말로 ‘작업 플랫폼’이었다.
작가 에드거 앨런 포는 책을 입수할 때마다 넓은 여백을 간절히 원했다. “여백은 저자와 다른 견해, 저자에 대한 동의, 비판적 언급, 나만의 생각 등을 적어 넣는 요긴한 시설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책의 여백에 적은 메모를 뜻하는 영어 단어로 마지널리아(marginalia)가 있다. 방주(旁註), 난외주(欄外註), 행간주(行間註) 같은 말도 있지만 여백 메모라 하는 편이 쉽게 다가온다.
여백 메모는 본문과 같은 지면에서 저자와 동격으로 대화하고 때로는 행간에 침입하여 저자와 맞서면서 새로운 텍스트를 창조해 낸다. 이러한 창조성 측면에서 독자가 곧 저자이기도 하다는 것, 저자와 독자는 일종의 공저자임을 미셸 투르니에가 말한다. “책 한 권에는 무한한 저자들이 있다. 그 책을 읽은 사람, 읽는 사람, 읽을 사람들 전체가 책을 쓴 사람에 더해져야 마땅하다.”
책과 기꺼이 어울리되 그 내용에 일방적으로 휩쓸리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경지. 여백 메모가 그 경지를 가능케 한다. 비평가 조지 슈타이너에 따르면 “지식인은 간단히 말해서 책 읽는 동안 펜을 드는 사람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