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與 예상한 부실 예측력으론… 10년 뒤 한반도 정세 전망 어려워 美蘇 체제 영원할 것 같던 시기… ‘소련 몰락’ 주장 제기됐지만 장밋빛 위장사기술만 판쳤다… 지금 필요한 건 자료를 읽는 혜안 위험에 눈감으며 위장하지 말라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20세기 말 소련 체제의 붕괴를 예로 들어보자. 되돌아보면, 그런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건만 소련의 몰락을 사전에 정확히 예견한 학자가 거의 없었다는 게 놀랍다. 사회과학의 예측력이 이런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하는 반성의 소리가 나올 만했다.
사실 소련 체제가 유지 불가능하다고 언급한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다. 1969년에 안드레이 아말리크는 ‘1984년까지 소련은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저서에서 소련은 외부 충격으로 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실제로 소련의 몰락을 초래한 것은 외부 충격이 아니라 내부 요인이었다. 1978년에 엘렌 당코스는 ‘파열된 제국’이라는 저서에서 소비에트연방 국가들 중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공화국들이 이반하여 연방이 해체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발트 해 쪽 공화국들이 먼저 연방에서 이탈했다. 당시로서는 나름대로 타당성 있는 근거 위에서 예측을 한 건데, 결과는 빗나가고 말았다.
예외적으로 소련 체제의 몰락을 명료하게 주장한 사람으로는 에마뉘엘 토드라는 프랑스 학자를 들 수 있다. 그는 1976년에 ‘최종 붕괴(Chute Finale)’라는 저서에서 소련은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길을 가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각종 인구 통계수치를 분석해서 그 같은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사실 통계수치를 보면 소련이 정상 상태가 아니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출산율 감소로 인구 증가 추세가 멈추고 조만간 심각한 인구 위기에 내몰릴 것이 분명했다.
기대수명의 하락은 가장 충격적인 지표 중 하나다. 1965년 남성의 출생 시 평균 기대수명이 65세였다가 1980년에 61세로 하락했는데, 산업화한 국가 중 기대수명이 떨어진 나라로는 소련이 유일하다. 모든 아이들에 대한 예방접종은 러시아혁명 직후인 1930, 40년대에는 가능했으나 오히려 1960, 70년대에 와서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유아사망률은 1970년대에 1000명당 30명에 달했는데, 같은 시기에 프랑스의 경우에는 8명에 불과했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신생아 출산은 연 500만 명이 채 안 되는 반면 낙태는 800만 건이 넘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알코올의존증은 망국병 수준이었다. 교통사고의 60%, 강간·살인의 80%가 술과 관련이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 수치는 1980년대로 가면 90%까지 치솟았다.
이런 수치들은 많은 사실들을 알려준다. 사회안전망이 붕괴됐고, 경제가 완전히 비정상 상태이며,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데다, 앞으로도 희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국민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이 모든 것을 숨기고 장밋빛으로 위장하는 사기술이 판치고 있었을 따름이다. 솔제니친은 ‘거짓말이 일반화하고 강요되고 의무화한 점이 우리나라의 가장 끔찍한 측면’이라고 지적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건 진정 어렵다. 그래도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말해 주는 자료들은 상당히 많다. 그런 것을 읽을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할 뿐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명료하게 정식화하지 못하더라도 느낌으로 큰 흐름을 감지하는지 모른다. 가장 위험한 것은 위험 요소들을 일부러 안 보려 하고 거짓으로 위장하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