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있는 건축/양용기 지음/456쪽·1만9000원/평단
저자는 독일에서 건축을 공부한 경기 안산대 교수다. 이 책이 ‘늦게 만나 아쉬웠던 몇 권’ 목록을 바꾸진 않았다. 하지만 숱한 건축 관련 서적이 덕지덕지 덧바르는 치장의 거품을 걷어낸 담백함이 미쁘다.
“학생들에게 ‘어떤 건축 책을 선호하는가’ 물었다. 대부분 ‘사진 많은 책’이라 답했다. 그림 많은 책을 보며 어떤 것을 자신의 지식으로 삼을 수 있을까. 아마 모방의 방법을 배울 거다. 디자인을 모방하는 건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어떤 형태가 가장 아름답고 좋은 형태일까? 그런 건 없다. 장소에 잘 어울리고 목적에 맞도록 기능하며 사용하는 이에게 편안한 것이 좋은 형태다. 좋은 형태를 얻는 건 좋은 친구를 얻는 것만큼 어렵다.”
20년 전 서울 어느 대학 건축학과의 설계수업 첫 학기 평가 과제는 일정 간격으로 연필 선 긋기였다. 두 번째 과제는 유명 건축가의 도면을 베껴 그려 오는 거였다. 지은이의 수업에 그런 과제는 없겠구나 싶다. 그의 수업을 듣고 있을 학생들이, 책장을 넘기다 조금 부러워졌다. 그러나 이미지 자료의 출처를 명기하지 않은 것은 책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린 실책으로 보인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