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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미현]아동 학대 뒤에 숨은 비정한 부모들

입력 | 2016-04-14 03:00:00

평택 계모부터 원영 군 사건까지… 고의냐, 미필적 고의냐 논란
‘설마 죽기야 하겠어’는 상해치사, ‘죽어도 할 수 없어’라면 살인죄… 죄에 상응하는 죗값 치러야
악질적 상해치사 응징하려면… 양형기준 세분화 필요




이미현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언제부터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악랄해졌을까? 2007년 평택 계모 사건을 비롯해 최근 드러난 원영 군 사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아동 학대 사건에서 힘없는 어린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가혹 행위들은 팥쥐 엄마조차 기겁할 지경이다. 그런데 더욱 답답한 것은 이런 사건이 세상에 드러날 때마다 살인이냐 상해치사냐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법적으로는 가해자에게 상해의 고의만 있었을 뿐인데 본의 아니게 피해자의 사망이란 중한 결과가 초래됐다면 살인은 아니다. 이런 경우 피해자의 사망에 대해 적어도 가해자의 과실은 인정할 수 있다면 상해치사가 성립될 뿐이다. ‘고의’란 죄의 성립요소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경우이고 ‘과실’이란 ‘정상의 주의를 태만함으로 인해’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언뜻 보기에는 서로 확연히 다른 것 같지만 두 개념의 경계는 사실 그렇게 명확하지만은 않다. 결과의 일반적인 발생 가능성은 예견하였으나 자신의 구체적인 경우에는 그런 결과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믿은 경우엔 소위 ‘인식 있는 과실’이라고 하여 과실의 영역에 속한다. 반면, 결과 발생을 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은 인식하면서 이를 용인하였다면 ‘미필적 고의’라고 해서 고의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니까 똑같이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다는 일반적인 가능성을 예견한 경우라도,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면서 때렸다면 상해치사인 반면 ‘죽어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했다면 살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 가해자의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이 정확히 어느 쪽이었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사후에 확인하는 것은 말만큼 쉽지는 않다. 앞의 아동 학대 사안에서는 그냥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밀어붙이는 것이 어쩌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법을 적용하는 데 구체적 타당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예측 가능성이다. 예측 가능성이 확보되려면 미필적 고의의 판정 기준이 모든 형사사건에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의 범위를 함부로 확대하는 것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과실범은 처벌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형법 체계상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여론의 빗발치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위와 같은 사건들에서 대체로 상해치사죄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죄명이 뭐가 됐든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죄인이 죄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의 문외한인 일반인들이 살인과 상해치사의 구별이라는 고도의 법적 판단 사항에 그토록 촉각을 곤두세우는 진짜 이유는 죄명이 형량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형법상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상해치사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유기징역은 30년 이하의 징역을 말하지만 가중하면 50년까지도 선고 가능하다는 점과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 양자 간에 법정형의 차이가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다.

대법원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보통 동기 살인은 기본적으로 10∼16년(가중하면 15년 이상)을, 비난받을 동기가 있는 비난동기 살인은 기본적으로 15∼20년(가중하면 18년 이상)을 선고하도록 돼 있는 반면, 상해치사는 기본이 3∼5년, 가중하는 경우에는 4∼7년을 선고하도록 돼 있다. 이런 양형기준에 따른다면 상해치사죄와 아동복지법위반죄가 경합적으로 적용된 칠곡 계모 사건에서 징역 15년이 선고된 것이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양형기준이 과연 국민의 법 감정과 정의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범인의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던 생각들이 무엇이었든지, 저항도 못하는 어린아이를 장기간 죽도록 괴롭히는 고의적인 가혹행위는 미운 인간을 단칼에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악랄한 범죄다. 물론 법적으로 양형기준은 하나의 기준일 뿐 재판부를 구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양형기준을 벗어난 형의 선고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발적인 살인보다 훨씬 더 악질적인 상해치사에 대해 적절한 응징이 이루어지도록 하려면 이제는 양형기준을 세분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피해자를 아꼈던 사람들이 인식 있는 과실과 미필적 고의라는 현학적인 법률 용어들의 애매한 경계를 오가며 피눈물을 흘려야 할 것인가.

이미현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