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영의 이혼소송/1704∼1713/강명관 지음/204쪽·1만3000원/휴머니스트
“‘나쁜 년’이네. 거기다 싸우고 밤에 혼자 나갔다며? 어떤 놈한테 손목이라도 잡혔을지 누가 알아요. 아내 말은 들어볼 것도 없어요. 이혼시킵시다.”(사헌부 장령 임방)
“남편 말이 사실이면 이혼이 문제가 아니라 아내를 형사처벌해야 합니다! 그래도 한쪽 말만 듣고 이혼시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아내 말은 들어 봐야죠.”(예조판서 민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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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소개한 사건 내용을 현대식으로 바꾼다면 이쯤 되리라. 충남 논산의 명문 종손 유정기는 아내와 사별한 뒤 1678년 신태영과 재혼하지만 1690년 그를 집에서 내쫓는다. 이혼은 또 별개 문제다. 숙종 30년(1704년) 유정기가 예조에 이혼을 신청하면서 9년에 걸친 조선 최대 이혼소송이 시작된다.
신태영은 영리한 여성이었다. 옥에 갇혀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음에도 논리적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숙종실록에는 “신태영이 수천 마디를 한글로 진술했는데 모두 조리가 있어서 어떤 문사가 대신 써준 것 같다”는 기록이 나온다.
신태영은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기도 하고, 남편의 ‘변태적’ 잠자리 취향을 언급하는 전략도 구사한다.
조선의 공식 기록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발견되는 것은 희귀한 일이다. 부산대 교수로 ‘열녀의 탄생’ 등을 내며 조선 가부장제의 억압을 연구해 온 저자는 축첩 문제 등에서 조선 후기 여성의 권력이 얼마나 약화됐는지를 심도 있게 재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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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