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등 “어린자녀 못보게 하세요”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들이 TV 토론 하는 날은 어린 자녀들을 일찍 재우는 게 좋겠습니다.”
3일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의 11번째 TV 토론 내용을 보도하면서 CNN 폭스뉴스 등 주요 방송사 진행자들은 이런 말을 종종 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했다간 선생님께 크게 혼날 것 같은 각종 욕설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데다 상대방 발언을 중간에 끊고 들어가는 등 토론의 기본 규칙조차 안 지켜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토론에선 선두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마코 루비오(상원의원)는 내 손이 작다(‘체격에 비해 손이 작은 사람 중 사기꾼이 많다’는 미국 속담이 있다)고 공격한다. 손이 작으면 다른 무언가도 작을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 아무 문제없다. 내가 장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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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지역 공영 라디오방송인 WNYC는 8일 한 대담 프로그램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청취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한 고교 교사는 “TV 토론을 본 학생들이 ‘저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미국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건가요’라고 물어 할 말이 없었다. 학생들에게 ‘그들(경선후보들)처럼 토론하면 절대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미 공영방송인 NPR도 최근 비슷한 주제를 다루면서 한 TV 토론에서 트럼프와 루비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 3명이 서로 말꼬리를 자르며 동시에 욕설을 주고받는 상황을 방송했다. 사회자는 “이들 세 명은 무려 33초간 이렇게 떠들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메리 스터키 조지아주립대 교수는 “미국의 자랑인 성숙한 시민사회의 규칙과 전통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끔찍하다. 토론회에서 상대방의 발언 기회와 발언 시간을 보장해 주는 건 시민문화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